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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만들고 나면(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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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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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우상이 있습니다. 그 우상은 가수일 수도 있고 탤런트일 수도 있고 운동선수일 수도 있고 영화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각 방송국이나 농구선수 축구선수들의 합숙소에 진을 치고 앉아 밤이 늦도록 자기의 우상을 기다리고 있는 여중생들을 보면, 『어서 집에 돌아가 저녁 먹고 공부해야지』라고 일러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철없는 젊은이들만이 우상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사상과 혁명의 우상이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 있다』 그런 혁명정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카를 마르크스요 블라디미르 레닌이요 로자 룩셈부르크요 체 게바라요 피델 카스트로였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눈에는 우상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마오쩌둥(모택동)이나 호치민(호지명)이나 호메이니나 김일성도 민중의 우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절대의 지지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종교의 이름으로 우상이 많이 등장하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럽의 문예부흥기에 나타났던 사보나롤라라는 성직자는 불같은 설교와 각종 예언으로 피렌체의 시민을 완전히 사로잡고 그 지역의 세속적 통치권을 놓고 저 유명한 메디치 가문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에는 거짓 예언자로 낙인이 찍혀 결국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신라의 신돈도 그런 인물이었고 제정 러시아말기의 라스푸틴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한때의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은 실속없는 한때의 환상이기 때문에 역사의 파도에 밀려나 사라지거나 속았음을 깨달은 민중에 의해 조만간 타도되게 마련입니다. 해방후의 이 나라 정치사에서도 몇 사람의 우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항일투사로 명성이 자자 하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초대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대통령도 광신적인 몇몇의 추종자들에 의해 우상처럼 떠받들어졌다가 그들 때문에 부정선거가 불가피했고 결국 4·19의 함성에 못이겨 하야했고 마침내 노구를 이끌고 다시금 망명의 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들이 한동안 즐겨 쓴 「민족중흥의 영웅」이라는 칭호도 따지고 보면 우상의 머리 위의 월계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 10월26일 청와대 근처 어느 안가에서 들려온 몇 발의 총성으로 「민족중흥의 영웅」이라는 이름의 우상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지난 5년동안 청와대의 울타리 안에서는 우상이나 다름없는 삶을 즐기다 마침내 이 나라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의 귀에는 항상 칭송의 가락만을 들려주고, 쓰디쓴 비판의 소리는 일절 전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김대통령 자신은 무슨 일이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줄곧 청와대의 감방 아닌 감방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 중에 불행한 사람들이 우상이 되어 우상의 길을 갑니다. 물론 말로는 어김없이 비극적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주변에도 우상급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드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우려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종찬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DJ 찬가」가 왜 이때에 필요합니까. 「김당선자는 바웬사 하벨 만델라같은 분」이라는 말에 공감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저도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이위원장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위원장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인인지 궁금합니다. 종로에서 처음 출마할 때부터입니까, 아니면 민정당의 요직에 앉았을 때부터입니까. 만일 김당선자가 바웬사와 같고 하벨과 같고 만델라와 같은 분이라면 어찌하여 김당선자가 군법회의에서 사형이다 무기징역이다 하여 중형을 선고받았을 때엔 왜 아무 말이 없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저도 이종찬 위원장과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러나 만델라 아닌 사람을 만델라 같다고 하고, 하벨 아닌 사람을 하벨 같다고 하고, 바웬사 아닌 사람을 바웬사 같다고 하면 김대중 당선자가 판단을 잘못하고 우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하는 충고입니다.

지도자를 우상으로 만들고 나면 우리는 모두 불행하게 될 뿐입니다.<김동길·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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