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가 2000년 둔황(돈황) 모가오쿠(막고굴)발굴 100주년을 앞두고 영국 프랑스 일본등으로 유출된 둔황 유물 반환에 발벗고 나섰다.중국 학계와 문화재 관련기관들은 유물반환을 위해 미국의 이 분야 전문변호사를 선임하고 본격적인 실태 파악에 돌입했다. 중국정부와 문화계는 최근 개혁 개방이후 경제 만능주의로 진나라때 분서갱유나 문화대혁명때보다 더많은 중국의 문화유산이 유출,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애석해 하고 있다.
간쑤(감숙)성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둔황의 모가오쿠가 발견된 것은 1900년 5월 26일이었다. 남북으로 길이 1.6㎞의 절벽 동굴속에 있는 430여개의 2, 3단짜리 작은 석굴에서는 당시 진에서 송대 1,000년에 걸친 유물·유적 6만여점이 발굴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은 굴중 제일 유명한 17호 창징둥(장경동)을 발견한 유랑도사 왕위엔루씨는 이곳에서 출토된 두루마리, 고서들을 헐값으로 서양인들에게 마구 유출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수많은 유물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이는 러시아인 오브루체프로 선물을 주고 유물 두 보따리 분량을 가져갔다. 이어 영국의 탐험가 소틴은 20상자의 고서와 회화류 5상자 등 5,000여점을 빼돌렸으며 이들 중 일부는 영국 대영 박물관등에 보관돼 있다.
다음해에는 프랑스인 페리오가 왕씨를 매수해 사경류 24상자와 회화 직물류 5상자 등 500여점을 반출, 파리 기메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신라의 승려 혜초가 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도 이때 프랑스로 넘어갔다. 또 1902∼1914년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도 이곳을 방문해 많은 유물을 빼갔으며 그중 일부가 한국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고 중국인들은 주장한다. 둔황은 이런 유물이 발굴됨에 따라 페허도시에서 관광·문화·역사도시가 됐으며 세계의 유수한 역사학자, 종교인, 미술가들의 연구센터가 속속 들어서게 됐다.
중국은 청나라 건륭 60년(1895년) 이전의 문화재는 일절 외국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 여유를 갖게된 중국인들이 문화선진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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