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엘리트는 외국문물에 어떻게 대처했나「조선은 1866년의 병인양요에서도 1871년 신미양요에서도 승리하였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천주교의 배후에는 군함과 대포 뿐 아니라 그것을 지탱해주는 공업력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조노(화원)대 교수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재일사학자 강재언(72)씨는 「서양과 조선그 이문화 격투의 역사」에서 당시 조선엘리트가 외국문물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 사상적 입장을 견지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다루고 있다. 17세기 중국을 거쳐 예수회의 종교서와 과학서가 들어왔고 그들에 의해 수학 과학 등 「기」의 과학이 전래됐지만 당시 학자들은 그것을 유교에 대항하는 이단문화로 설정, 척화이론을 수립했다.
책은 서구문물의 간헐적 접촉을 통해 중국 중심의 세계인식에서 벗어나게 되는 17세기, 북학파·사학파 등으로 나뉘어 서학 수용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던 18세기, 서학금지와 쇄국정책, 강제개국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비극이 시작되는 19세기로 이어지는데 방대한 문헌과 깊이 있는 해석이 읽기 좋다.
제주 출신의 강씨는 일본에 살며 「조선의 개화사상」 「조선근대사 연구」 「조선의 서학사」 등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40여년의 세월을 바쳤다. 『민족주체는 외국문화에 대해 시비와 득실을 갈라 볼줄 아는 실사구시의 자세라고 본다』는 그는 구한말 연구의 목적을 「감고계금」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과거를 거울로 삼아 그 교훈을 현실에서 유용하게 활용하자는 뜻인데 요즘같은 「IMF 시대」에 묵직한 울림이 있다.
이규수 옮김, 1만 2,000원.<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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