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기업대리 “씁쓸한 강도 돌변”/실직 20대 분유값 마련 “부정의 절도”『은행빚에 쪼들리다보니 살길이 막막해서』 『그렇다고 강도를 생각해』
14일 상오 컴퓨터판매회사 대리인 김모(33·경기 남양주시 화도읍)씨가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를 털려다 붙잡혀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계에서 강도예비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전날 상오10시께 잭나이프와 청테이프를 준비해 부유층이 사는 강남구 압구정동 H아파트 9층부터 14층 사이를 오르내리며 범행대상을 찾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김씨는 3년전 결혼하면서 3천여만원의 빚을 졌고 5월에는 현재 사는 6천7백만원짜리 25평 빌라를 사면서 3천만원의 빚을 새로 안게 되면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월평균 1백60만원의 봉급은 은행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는데 거의 소진, 생활비는 10만원이 고작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빌리고 카드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쓰다보니 5백만원이 더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이후 대출금리가 높아지면서 이자부담이 가중되자 부잣집을 털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이 열린 집을 발견했지만 결행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빚에 쪼들리면 집을 팔아 단칸방으로 다시 시작할 결심은 왜 하지못했느냐』는 형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떨궜다.
비슷한 시간 서울 양천경찰서 유치장.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고물상에 쌓인 물건을 훔치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김모(26·성동구 행당동)씨가 아기를 업고 면회 온 아내(30)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김씨는 13일 하오 2시50분께 양천구 신정동 J고물상에서 알루미늄새시 30㎏, 고철 1백㎏, 전기펌프모터 1대 등 36만원어치를 훔치다 주인에게 붙잡혔다.
김씨는 5년동안 다니던 봉제공장이 지난해 11월 문을 닫자 인력시장, 건설현장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았으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11일부터 손수레를 빌려 고물수집을 시작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해 1월 고아출신인 아내와 결혼해 얻은 6개월된 아들의 「힘없는 울음소리」가 귀에 생생해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김씨 아내는 『한번만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담당형사에게 매달렸다.
형사들은 『앞으로 두 김씨와 같은 사람들을 얼마나 더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정진황·유병률 기자>정진황·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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