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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질서 개편만이 살길/조윤제 서강대 교수(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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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질서 개편만이 살길/조윤제 서강대 교수(한국논단)

입력
1998.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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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일본을 따라가기만하면 됐지만/이젠 일·대만보다 앞서 철저히 개혁해야한다”요즘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보고 IMF사람들은 좀 억울하게 느낄지 모른다. 한국이 스스로 경제를 잘못 관리해 초래한 한파를 가지고 왜 IMF 탓을 하느냐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다.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것은 물론 그동안 필요한 구조개혁을 미루어온 우리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은 스스로의 잘못과 함께 어찌할 수 없었던 세계경제질서의 개편이라는 큰 흐름이 있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공산주의,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한반도에서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나 우리는 냉전시대의 아픔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깊이 겪었듯이 냉전시대가 끝나고 세계경제질서가 개편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번 그 격동에 가장 먼저 휘말려 심한 열병을 앓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의 경제발전은 세계경제 발전사에 기록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많은 문제점을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 소위 동아시아적 경제발전 모델이라는 정부 기업 금융기관 간의 유착관계 속에서 기업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정부가 적극 나서 통화팽창이나 국민부담으로 상쇄시켜주고 정부가 위험 동반자가 되어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 지원해주는 경제관리방식에서 기업의 방만한 투자, 높은 부채비율은 유지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우리는 60년대 중반이후 외채의존적인 경제발전을 하게 되어 계속 대외채무국의 입장에 놓여있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경제구조는 대외경제환경 변화에 극히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입과 냉전체제하에서의 보호막에 의해 그런대로 유지가 되었다. 자본의 네배가 넘는 기업들의 평균부채비율, 대기업채무의 약 3분의 1이 외채인 경제가 오일쇼크 등 경제변동 속에서 지탱해왔던 것은 그러한 세계정치·경제질서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난 약 10년간 세계정치·경제질서는 크게 변했다. 전자통신기술의 혁명과 각국 경제의 개방화물결로 국제간의 자본흐름은 극히 유동적이 되었으며 우리와 같이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언제라도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동시에 이제 세계 초강국은 미국 밖에 없으며 미국은 동아시아와 서유럽국가들을 안보의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은 냉전체제 하에서 가지고 있었던 정치·군사면의 우월적 지위를 그들의 경제구조조정에 십분 활용해 일본과 유럽의 통화를 절상시키고 또한 한국과 대만의 통화를 절상시켰으며 이들의 상품·금융시장을 양자간 혹은 다자간 채널을 통해 개방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동안 경제운용방식과 시장관행이 특히 달랐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그들의 막강한 기관투자가들과 금융자본을 배경으로 영미식 시장자본주의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일본과 대만, 중국은 이러한 세계 정치·경제질서의 개편과정에서 우리보다 훨씬 여유를 가지고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처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외채권국이며 두터운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금융불안이나 구조적 취약성 노출 그리고 경제침체가 외환위기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외채의존적 경제발전을 하다보니 새로운 국제금융시장 환경과 세계경제질서 하에서의 구태의연한 경제운용과 구조적 취약성 노출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처럼 곧바로 외환위기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일본이나 중국 대만보다 앞서 동아시아적 시장질서에서 서구식 시장질서로 개편해나가야 하는 실험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것이 긴 역사과정에서 이 시대의 주어진 운명이며 우리 세대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도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일이다. 그것은 배타적 감정이나 외국자본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안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과 주어진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민첩하게 적응하여 생존기반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유일한 선택은 국민들의 이해와 뜻을 모아 이른 시일 내에 IMF와 합의한 부실금융기관 정리, 정리해고, 회계제도 개선, 기업지배구조 현대화 등 구조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내놓아 해외투자자의 신뢰와 이해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IMF와의 협의하에 환율, 금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렵게 이루어온 그동안의 산업기반이 일시에 무너질 위험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새로운 국제환경을 직시하고 생존을 위한 기존의 조직, 제도, 질서에 대한 철저한 개혁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일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나 이제는 일본 중국 대만보다 앞선 시장질서의 개편을 실행해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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