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는 가난하지만 이웃사촌있어 마음 든든”/불황으로 공장닫은 손씨 도와 10년지기 이웃 3명 개업준비 도맡아/“3평반 가게안엔 사랑이 가득”대구 수성구 만촌3동 대륜중고앞 골목을 끼고 100여개의 점포가 길게 늘어선 만촌시장에는 요즘 시장의 왁자지껄한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설날을 얼마 앞두지 않은 대목인데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매상도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시장어귀에 분식집을 낸 손국자(47)씨는 그러나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불황추위가 그다지 두렵지 않다. 첫달만 해도 가게세를 내고 100만원의 수입이라도 건져지던 것이 이달부터는 매상이 절반이하로 줄고 가겟세 내기도 어려운 지경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3평반의 가게도 손님이 없어 썰렁할까봐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을 들이미는 「시장식구들」덕분이다. 『오늘 마수는 했나』『칼국수는 칼국수좋아한다는 그사람이 미워서 안 먹으러 오는 갑다, 칼국수 빼고 김치전이나 고구마튀김같은 걸 해라마』 근처에서 채소가게를 하는 김기현(45)씨가 한가로운 시간에 짬을 내 가게에 들어선다. 『봄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장사라는게 잘될 때도 있고 안 될때도 있는 거 아이가』 옆의 「대구슈퍼」주인 허효순(45)씨도 따라 들어선다.
참기름집의 이미영(47)씨와 함께 네 사람은 시장통에서 「사총사」로 불린다. 10년이상 같은 동네(만촌3동)에 살면서 「집안에 누가 아픈지, 냄비 그릇은 몇개나 되는지」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서로의 집안사정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요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하루라도 안보면 안될 사이」가 됐다.
지난해 8월 불경기로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철망제조 가내공장의 문을 닫은뒤 맥없이 지내던 손씨에게 분식집을 내도록 권유한 것도 이미 장사를 하고 있던 세사람이었다. 가게터를 알아보고 의자 식탁 그릇등을 구입하고 메뉴를 준비하는등 장사준비를 하는데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장사라는 걸 처음 하는 손씨인지라 손님 비위맞추는 일, 이윤남게 장사하는 일에 도통 서투르기만 했다. 장사선배인 이들은 틈만 나면 손씨의 가게에 와 일을 거들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끼리 도와야 한다는 것은 이들이 본능적으로 익힌 생존법칙이기도 하다. 『음식이 맛이 없어도 꼭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는게 고맙다』는 손씨는 참기름 고춧가루 같은 양념류나 채소등 음식재료를 꼭 같은 시장식구들에게 가서 사온다. 나머지 세사람은 『장사는 장산데 더 싼 도매상에 가서 구입하라』고 권하다가 이제는 한 주먹씩 덤을 얹어주는 것으로 손씨를 돕는다.
요즘엔 이전보다 횟수가 줄었지만 가끔씩 쌈짓돈을 모아 소주파티를 벌이거나 노래방에 함께 가는 것도 이들에게는 빠트릴 수 없는 행사이다. 새벽부터 밤늦게 일해도 빠듯하기만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이때만큼은 온갖 고단함과 시름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웃이 있으니까 부자아이가』<대구=김동선 기자>대구=김동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