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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노동조합

입력
1998.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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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정 대립은 IMF시대 노동시장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다/본격적인 산업구조조정을 앞둔 위기의 노동조합 무노동 무임금·조직력 약화 등 산을 넘어 일자리 지키기와 경제 살리기의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해법은…노동조합이 위기다. 최근 정리해고제를 둘러싼 노·사·정의 대립은 노동계를 진퇴양난의 궁지로 몰아넣었다. 노조의 근본적인 기반인 노동자들이 위협받고 있으나 국가 부도 위기라는 상황 때문에 예전처럼 강경일변도의 전략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가장 효율적인 투쟁수단인 단체행동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공멸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정리해고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노동계에 엄청난 한풍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 수십년간 고성장 저실업의 경제체질에 적응해 온 노조에도 지각변동은 불가피하다. 노조도 「강요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된 상황이 오고 있다. 노동조합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노동조합은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노동계에서는 『무엇보다 앞으로의 노동시장 성격에 맞는 노조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훈 연구위원의 말. 『노조활동의 초점이 임금 수준 향상, 기업 복지 확충 등 조합원들에게 보다 큰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분배」 위주에서 사회적·개별기업적 차원에서 얼마나, 어떻게 일자리를 지킬것인가 하는 「고용」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사용자도 지금까지 정책 결정과정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소극적인 정책 대상이었던 노동자들을 적극적인 정책의 주체, 경영에 참여하는 생산주체로 바로 세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노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업별 노조건설 논의도 새로운 위상을 찾으려는 시도 중의 하나다. 최근 노동계는 계속적인 조직률 하락(95년 12.7%, ILO 집계)을 겪어왔다. 고용과 사회복지 문제가 앞으로의 노사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자각도 있다. 산별 노조는 함께 묶을 수 있는 노동자의 수가 많기 때문에 조직 기반을 다지고 목소리를 모으는 데 효과적이다. 또 고용문제는 사회·제도·정책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기업별 단위 노조가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도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주요 활동의 축으로 산별 노조를 세우는 것이 노동계 구조조정의 큰 틀』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주금속노련,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자동차연맹 등 금속관련 3개 조직이 2월까지 통합 조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재벌 구조에 맞춰 이질적인 노동자들을 그룹 차원에서 묶은 현대의 현총련,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다. 재벌 개혁과 함께 이들도 기업별, 산별, 업종별 조직으로 합종연횡을 앞두고 있다.

미증유의 경영 압박에 시달릴 기업주와의 관계도 중요한 외부 변수의 하나. 정리해고 무노동무임금 등 미국식 노사관계가 도입되면,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한 노사관계에 첨예한 대립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이영호 연구위원도 『급격한 노동시장의 변화가 단기적으로 노사관계의 악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노조의 활동 여건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우선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이 줄어들어 조합비·맹비 갹출이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측에서 제공하던 물적 지원도 줄거나 끊길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조합비를 내도록 하는 실질적인 활동을 준비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노조전임자 문제도 마찬가지.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이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끊으면, 노조는 빡빡한 조합비에서 간부들의 월급까지 추려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단체행동시 소득 보전을 위한 대책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노조 운영자금의 30% 가량이 「파업기금」으로 적립된다. 사용주들이 무노무임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할 경우 임금 보전을 해야 하는 부담을 노조가 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자가 파업시 임금 일부를 지불하거나 단체행동이 끝난 뒤 상여금을 지급해 임금을 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관행이 계속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노조의 재정 지출 내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조사비, 대외행사참여비, 문화사업비, 노보제작비 등이 불필요한 지출이라는 지적도 있다. 노조가 공제단위로도 기능해 온 독특한 문화가 있지만, 조합 활동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일부 대기업의 「공룡노조」에서는 이제 노조도 거품을 빼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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