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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답답한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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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답답한 금융노조

입력
1998.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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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부도·은행 매각예정 등 감원·해고 현실로 다가왔지만 집회한번 못갖는 ‘무력함’ 실감감원의 현실과 해고의 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노동자는 20여만 금융기관 종사자들이다. 이들에게 무더기 해고는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엄습한 현실이다. 피할 수도, 피할 곳도 없다.

지난달 5일 금융사 최초로 부도를 낸 고려증권 직원 중 3분의2 이상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났다. 조만간 인수자가 나서지 않으면 나머지 300여명의 임직원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벼랑끝 위기에 서있다. 증권사 중 2번째로 부도를 맞은 동서증권은 1,400여명의 임직원이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역시 인수 전망이 불투명해 장래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내달 공매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매각절차를 밟기로 정부 방침이 확정된 서울·제일은행 직원들. 1월 중으로 부실 금융기관 노동자 우선 정리해고를 위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합의함으로써 마지막 안전장치까지 풀려버렸다. 제일은행의 한 대리급 사원의 말. 『매각되면 전임직원의 60%를 자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옆자리의 동료가 나가주기를 바라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조합 측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은행 노조의 한 관계자. 『노조원들로부터 「어떻게 되는 거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오지만 지금 형편에서는 파업은커녕 집회 한번 갖기도 힘들다. 당장 조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노동조합은 노조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조직인데, 제노릇을 할 수 없어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무력감의 토로이다. 그는 『관치금융을 일삼아 온 정부와 재벌이 져야 할 책임을 노동자가 뒤집어 써야 하는 게 분통터지지만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며 『다만 납득할 만한 해고기준 설정과 해고자에 대한 사후조처, 향후 있을 인수협상과정에 노조 참여 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열린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전국회원조합대표자회의는 착잡한 밑바닥 분위기를 반영하듯 시종 무거웠다. 50여개 산하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금융노동자를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에서부터 『적극적인 정치세력화를 통해 5월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 회의는 결국 정부가 『금융노동자 우선 정리해고 방침을 즉각 철회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금융노련 이규홍 부위원장. 『외국 금융기관이 매수하기 좋게 제나라 노동자들의 목을 치는 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정리해고는 부실금융기관에 한정한다고 하지만 일단 물꼬가 터지면 무더기 정리해고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일 아닌가? 금융노동자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전체 노동자와 노동운동 전반의 위기다』<황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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