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위기극복의 첫걸음이 재벌구조개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재벌들도 동의한 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로부터는 하다못해 그 흔해 빠진 선언 하나 없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역시 말을 아끼는 모양이다. 자칫 말 한마디에 천냥을 날려버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리라. 잃을 것이 없는(마르크스에 따르면 「사슬 밖에는」 잃을 것이 없는)사람들은 그래서인지 말만큼은 확실하고 단호하다.「나라 판을 새로 짜자」 「총파업 불사」 등. 이들은 「고통분담」논리에도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이것은 비단 「고통전담」의 위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락 가운데 항상 고만 분담했지 그 열매인 낙을 함께 누려본 경험이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보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낙이란 반드시 물질적 보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다운 대접, 기업경영에 대한 참여권리와 동시에 책임등도 이에 속한다. 다시말해, 그 수많은 「한가족주의」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사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룬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 민족 특유의 공동체의식이 지금까지는 주로 가부장적 지배전략으로만 악용되어 왔음이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어느 때 보다도 공동체적 연대가 필요한 이 시점에 우리는 공동체주의가 상당 부분 허구였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체주의를 버려야 할 것인가. 오히려 정반대다. 이 위기상황에야말로 우리 전통문화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공동체의식을 재활성화하고 부활시켜야 한다. 단 지금까지와 같은 지배전략으로서의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개혁된 공동체주의라야 한다. 물론 IMF (더 정확히는, 그 뒤에 있는 미국 및 서구문화가)가 요구하는 것은 그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관철시키고자 하는 제도들의 기본정신은 철저한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와 제도들간의 갈등이 아니라 세계관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도만 받아들이고 그 기본정신은 거부할 수는 없는가. 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나」에 대한 책임에 그치지만 공동체주의는 「나」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나를 초월하는 집단에 대한 책임의식을 의미하며 따라서 공동체주의는 개인주의적 제도를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은 안된다. 역설적인 것은 지금 우리에게 개인주의를 강요하고 있는 서구문명 자체는 가족해체 및 사회해체 현상에 직면하여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이런 모든 노력은 무망하다. 그에 반해 우리에게는 공동체의식이 아직도 「피와 살」이다. 우리는 이 귀하디 귀한 「상징자본」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단, 그 전제조건은 공동체주의의 내용과 원칙을 지금까지와 같은 「가부장적 지배전략」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공동체주의의 개혁에 성공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는 제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럴 경우 우리는 단순히 IMF위기의 극복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성(제1근대성)과 사회주의적 근대성(제2근대성)을 넘어서는 「제3의 근대성」을 인류에게 선사하는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개혁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수술(제도이식)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죽어버리는」 역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가족노사민족의 진정한 공동체화, 즉 「해방된」 공동체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정권교체는 가장 큰 단위인 민족공동체화 작업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의 극복이라는 거보를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반쪽」 성공이다. 이제 북한을 껴안는 한민족 공동체를 위한 걸음을 내딛자. 이 거보를 위해서는 지금의 우리 위기상황이 바로 적기이다. 왜냐하면 지금 남북한은 민족공동체적 연대이외에 「난파한」 사람들의 동지애로도 손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의 위치에서만 협상하겠다는 것은 동포애적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서구기업에 의한) 흡수공포에 시달리는 우리가 흡수통일을 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북한도 알 것이다. 바로 이 때가 세계에 유례 없는 단일민족의 공동체의식이라는 상징자본을 최대한 활용할 적기이다. 과감한 군비축소를 제안하며 서로 돕자. 그러면서 자본주의적 근대화에서 난파한 남과 사회주의적 근대화에서 난파한 북이 함께 「제3의 근대성」을 창출하자.<한양대 교수·정보사회학과>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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