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본보 보도 성금답지 병훈군 숨져/남은 돈에 이웃정성 4천여만원 기금골수암에 걸린 고교생을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주민들이 환자가 숨지자 남은 성금에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태 보은의 장학회를 만들었다. 성금을 보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길이 간직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뜻을 모은 것이다.
13일 상오 11시 서울 강북구 번3동 영구임대아파트 207동 205호 이생우(55)씨 집에서는 94년 8월 골수암으로 숨을 거둔 이씨의 장남 병훈(당시 21세)씨를 기리는 조촐한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92년 한양공고 3년생으로 골수암에 걸려 투병하던 병훈군을 살리기 위해 설립한 「병훈군 돕기 성금관리위원회」를 해체하고 치료비로 쓰고 남은 성금에다 이웃들이 낸 성금을 보태 「강북보은장학회」를 설립했다.
장학기금은 당시 한국일보(92년 6월13일자 22면)를 통해 병훈군의 딱한 처지가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답지한 성금 3,000여만원중 남은 1,000여만원에다 번3동지역주택조합이 기탁한 3,000만원, 이웃주민 20여명이 따로 낸 500여만원 등이 합쳐져 총 4,573만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이씨는 『병훈이는 숨을 거뒀지만 병훈이를 살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많은 분들의 사랑은 지금도 살아숨쉬고 있다』며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기금이 보람있게 사용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번3동 24반통장으로 현재 구의원인 정수민(52)씨는 『장학회는 매년 지역의 불우학생 24명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무의탁노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보호대상자들이 태반인 번3동 주공아파트 주민들은 병훈군이 수술비가 없어 시들어가자 주머니 돈을 털어 병훈군 살리기에 나섰고 이 소식이 한국일보를 통해 알려지면서 10여일만에 전국에서 3,000여만원의 성금이 답지했었다.
병훈군은 같은 해 6월23일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이듬해 2월 학교를 졸업한뒤 가정을 돕기 위해 자동차정비공장에 취업, 근무중 병이 재발해 94년 8월30일 숨졌다. 장학회 연락처 (02)9843554<이동준 기자>이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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