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록스노조 경영참여로 생산성 향상/텍사스 인스트루먼트해고자선정 노사합의 기준따라/폴크스바겐노동시간 단축 통해 ‘일 나누기’극심한 불황은 경영진에게 「악몽의 순간」이지만, 일자리를 잃을 위기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도 「최악의 시나리오」다. 경영진이 도산 위기의 회사를 구하기 위해 십방으로 뛰어 다니듯, 노동자들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과정에서 노사관계는 자칫 최악으로 치닫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더라도, 수많은 기업의 생사가 가름난 극심한 불황을 극복해 낸 사례는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쪽의 양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고,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82년 미국경제에 불황 한풍이 몰아쳤을 때.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사는 대량 감원을 단행했다. 경영 위기가 높은 인건비 등 고비용구조에서 온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사기를 잃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뚝 떨어져 경영지표가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주저앉았다.
회사는 노동력 감축보다 노동조합을 경영에 적극 참여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노조의 「노사협력위원회」 구성 제안이 계기가 됐다. 노사가 머리를 맞댄 합동연구팀에서는 바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경영개선책들이 나왔다. 회사의 인원 불감축 방침에 대해 노조는 임금동결, 의료보험비 노사분담, 결근방지 등을 약속했다. 10년에 가까운 불황을 넘긴 끝에 89년부터는 정례적인 임금인상이 가능했다. 노동자들의 고용은 최대한 보호됐다. 그동안 노사간에 신뢰가 쌓여 단협 기간과 비용도 6분의 1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가로 위기를 돌파한 예다.
고용 조정과 감량이 필수적인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노사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DSE 그룹」은 80년대 급격한 수요 감소로 1,000여명을 감원할 사정에 처했다. 회사측은 해고 인력을 선정하는 데 노사가 합의한 공동 평가기준을 적용시켰다. 또 해고인력에게는 6개월 전에 미리 통보해 전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종업원이 전직 의사를 밝힐 때에는 구직활동을 위해 2개월의 유급휴직기간을 보장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사는 「일 나누기(Job Sharing)」로 불황을 견뎌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은 20%의 임금삭감과 1인당 노동시간의 단축을 감수하고 3만여명을 실직의 위험에서 구해 내, 경기 침체기의 새로운 고용 모델을 만들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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