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보는 시선의 원숙함과 나직하고 깊게 스미는 언어들「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풀잎」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박성룡(68) 시인의 시력 42년을 담은 시선집 「풀잎」(창작과비평사 발행)이 출간됐다. 56년 등단한 뒤 펴 낸 6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 중 절창을 고른 것이다.
박시인의 시편에는 언제나 사물을 보는 시선의 원숙함이 배어 있다. 그 시선을 유장하게 풀어내는 것은 토속어와 한자어의 절묘한 배합을 통한 음악성과 조형미이다.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과목」 에서).
「무모한 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 … 한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가는/ 피비린 종언처럼/ 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교외」에서)고 읊조리던 젊은 시인은 이제 「고향은/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고향은 땅끝」에서)며 고향을 그리고 있다. 「그 누군가 우리에게 꽃을 창조해줄 때도 여러가지 궁리는 있었나 보다」(「꽃」에서)라고 되뇌이는 그의 시는, 우리가 「풀잎」을 부를 때면 그의 시구처럼 몸과 마음이 풀잎처럼 되어버리듯 나직하고도 깊이 있게 스며드는 언어들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