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경영·문어발 확장 법적 제재/재계 판도변화·도태 가능성도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 특히 재벌들은 앞으로 「빚경영」 「황제경영」을 버리지 못할 경우 법적 제재를 받는다. 이에따라 이같은 방침이 시행되면 그 시행정도에 따라 재계의 판도 변화는 물론 적응치 못하면 아예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의 재벌개혁이 전횡을 행사해온 오너의 독단을 견제하고 차입을 억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재벌들은 IMF 한파에 군살을 도려내야 하는 「강제 다이어트시대」를 맞게 됐다고 볼 수 있다.
12일 김당선자측은 가장 합법적인 수단인 ▲상호채무보증 금지 ▲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 소액주주 권한 강화 등으로 재벌개혁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무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의 반발과 경제난을 이유로 번번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방안들이다.
우선 상호채무보증 금지는 재벌들이 계열사끼리의 빚보증을 통해 은행돈으로 자기자본의 4배 가량을 빌려 벌여온 문어발식 확장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현재 30대 재벌이 갖고 있는 상호지급보증은 62조원가량. 이를 일시에 없애라고 주문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대외신인도제고와 재벌폐해 시정을 위해 99년 3월까지 완전해소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더라도 재벌들에게 앞으로 1, 2년은 고통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빚보증을 없애려면 ▲채무를 갚거나 ▲계열사를 정리 또는 합병하거나 ▲보증을 자기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융관행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한 자산을 대거 매각, 빚을 갚는 수밖에 없다. 주력업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야 하는 셈이다. 빚보증을 해소하지 못하면 3∼5%의 과징금도 부과된다. 현재는 10%이내로 과장금을 부여토록 돼있어 당국의 자의적 적용이 가능했으나 이를 분명히 규정, 강화한 것이다.
결합재무제표제도는 상호빚보증 금지 조치를 보완 하는 동시에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다. 결합재무제표란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친·인척)이 지분을 갖고 상장·비상장 법인의 거래관계를 한 곳에 모아놓은 재무제표. 이를 작성하게 되면 재벌총수등이 임원 선임권을 행사하는등 사실상 경영하고 있는 회사들의 ▲상호지급보증현황 ▲내부거래 내역 등을 포함한 그룹전체의 재무구조가 드러나게 된다. 투자자들의 경영감시가 한결 수월해 진다.
재정경제원 당국자는 『결합재무제표가 도입되면 재벌 그룹들의 매출이 현재보다 20∼3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형을 부풀려 많은 돈을 끌어다쓰고, 부당 내부거래 등으로 특정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
소액주주의 대표 소송권과 정보열람 요건을 현행 1%와 3%에서 각각 0.1%와 0.5%로 완화하는 방안은 지배대주주의 견제장치를 보강하는 것이다. 앞으로 소액주주도 특정회사의 0.1%만 갖게 되면 경영부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남소나 위협소송 등에 따른 재벌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또 외부감사를 반드시 선임하도록 한 것도 오너의 독단에 의한 과·오 투자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은 엄격히 묻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결국 재벌들은 빚을 없애고 투명한 경영을 하지 못할 경우 정부의 제재와 동시에 주주들에 대한 피해배상, 주식소각에 따른 경영권 상실 등 다양한 수단에 의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들 방안은 재벌들에 대한 「채찍」위주여서 순수지주회사 허용 등 재계가 바라고 있는 「당근」도 13일 김당선자와 재벌총수간 회동에서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정희경 기자>정희경>
◎재계의 반응/계열사 줄줄이 도산 우려/상호지보금지 등 조속해결 난색
재계는 윤곽을 드러낸 대통령당선자측의 「기업구조조정 특별법」에 대해 부분적으로 환영하면서도 대부분의 조항에 대해서는 반대와 우려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계는 우선 기업 인수·합병(M&A)때 취득세나 등록세 부가세등 세제혜택을 주고 기업 분할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과 관련, 『최근 전경련을 통해 박태준 자민련 총재에게 공식 건의한 내용』이라며 『기업의 구조조정을 속도감있게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재계는 그러나 상호지급보증의 조속한 해결을 겨냥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재계는 금융 및 주식시장의 경색으로 채무상환과 신용대출전환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99년까지 상호지보를 전면금지하려 할 경우 금융기관이 대출을 회수하게 돼 30대그룹의 많은 계열사가 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특히 화의를 신청할 경우 경영진의 일정주식 소각과 증자를 의무화하도록 한 기업 경영진의 책임추궁조항에 대해 『이는 기존 관행과 비교할 때 적지않은 변화를 초래하는 조치』라며 기업경영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는 화의든 법정관리든 기업주의 책임을 반드시 추궁하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주들은 부실경영의 책임범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99년 결산부터 작성을 의무화하도록 한 결합재무제표와 관련, 재계는 『외국에도 없는 새로운 제도이어서 2년여의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식회사 외감법에 의해 규정한대로 2000년 회계연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이종재 기자>이종재>
◎비대위 입장/“기업들 불안감 감안했다”/보고내용은 원안보다 완화한것
비상경제대책위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지나친 불안감과 위축된 분위기를 상당히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가 12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보고한 내용은 원안보다 상당히 완화한 수준이라는 것이 비대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대위는 지난 5일 김당선자의 지시에 따라 가이드라인 작성작업에 착수하면서 두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문어발식 경영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 둘째 정부가 나서서 법으로 강제하기 전에 가능한한 기업들 스스로 자율적인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기업들은 당장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전면 실시되는 등 차기정부의 「재벌 다스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경련이 나서 상호지급보증 금지 실시 연기 등을 요청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비대위는 기업들의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 가이드라인 작성과정에서 의견조율을 거쳐 수위를 조절했다는 후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관련, 기업의 자기자본 1백% 초과분에 대한 과징금을 원안보다 내린 것. 원안은 과징금이 6∼7%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당선자가 박태준 자민련 총재를 내세워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도록 했던 방침을 바꿔 13일 직접 만나기로 한 것도 차기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결코 강압 일변도가 아님을 설명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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