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구조조정보다 ‘길들이기’ 중점/정부조직은 되레개악 시스템마비역대 정권치고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개혁을 개혁답게 추진한 정권은 없었고 개혁에 성공한 정권은 더욱 없었다.
특히 현 정부는 5년 내내 「개혁의 전도사」임을 자처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자신이 개혁의 타깃이 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개혁에 관한한 현정권은 철저한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현 정부의 개혁실험은 ▲일관된 철학과 프로그램의 결여 ▲목적과 수단의 혼돈 ▲사심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다. 애당초 개혁은 없었고 사정만 있었을 뿐이란 지적도 있다.
우선 재벌에 대해 현 정부는 「개혁」보다는 「길들이기」를 좋아했다.
원칙없는 공기업민영화로 경제력집중은 오히려 심화했고 특정 대기업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대형사업의 인허가를 차별해 업종전문화 논리는 뒤죽박죽이 됐다. 대선의 앙금을 씻지 못하고 현대그룹에 2년간 금융제재를 하고 오너가 정부정책을 비판한 선경그룹을 내부거래조사하는 등 개별 재벌에 대한 「손봐주기」만 있었을 뿐 재벌 구조를 뜯어고치려는 정책은 없었다.
공공개혁은 오히려 개악됐다. 현 정부만큼 조직개편을 즐겨한 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는 공공개혁은 오히려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었다. 재정경제원이 그렇다. 공론화 과정 없이 청와대내 소수 실세경제관료 손에 의해 밀실에서 탄생한 재경원은 정부내 정책결정과정에서 견제와 균형, 토론과 합의 문화를 사라지게 했다.
특정 주도세력의 자파확대라는 사가 끼여들면서 인적구성마저 전문성의 결여를 가져와 눈앞에 닥친 외환위기도 보지 못하는 시스템의 실패를 가져왔고 IMF체제의 초래라는 역사적인 죄를 범하고 말았다.
갑자기 해양대국을 만들겠다며 해양수산부를 신설하고 농산물시장이 개방되자 청와대 농수산수석실을 급조한 것도 철학과 프로그램의 부재를 보여준 사례다.
지난해에는 「금융감독기구가 통합되면 대외신인도가 높아진다」는 이상한 논리로 국가부도위기 소용돌이 속에서도 긴급대책 모색은 커녕 감독조직을 고치는데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금융개혁은 철저하게 표리부동했다. 출범직후 작성된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 강조됐던 부실금융기관의 도태, 인수·합병(M&A)을 통한 금융기관 대형화는 단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다. 금융자율화를 외치면서도 작년여름까지 은행장인사를 좌지우지했다.
노동개혁은 재벌·정부개혁이 수반되지 않았던 탓에 근로자들에 대한 설득력을 잃었고 추진방법과 시기마저 잘못 선택,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현 정부의 개혁실패는 새 정부의 개혁에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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