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출범을 앞두고 한국어문회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국한문 혼용정책의 부활을 호소했다. 이 학회는 『한자문화권에서 문화경제교류를 원활히 하고 전통문화를 계승·창달하기 위해서는 한자실력이 앞서야 하며, 한자는 특히 어려서 배워야 기억이 잘되고 응용력이 붙는다』고 역설하고 있다. 학회의 주장대로, 한자를 섞어 가르치던 1970년 이전의 정책으로 환원하려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외 환경이나 경향으로 볼 때, 경청할 대목이 더 많고 한자교육과 국한문 혼용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지금 세계는 큰 테두리 안에서는 세계화를 지향하면서도 지역적·문화권적으로는 더욱 블록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단합을 강화하는 북미권과 내년부터 단일통화까지 사용하려는 유럽연합(EU)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전용에 치우침으로써 중국 일본 등 경제적으로 막강해져 가는 동북아의 한자문화권에서 섬처럼 고립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4,000년에 걸친 한자사용 역사와의 단절은 논외로 하더라도, 당장 우리의 젊은 세대가 베이징(북경)이나 도쿄(동경)의 간판조차 읽지 못하며, 그 나라 사람들 또한 도로표지판 등에 한자가 거의 없는 한국에 와서 문맹인이 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조차 90년대 들어 문화경제적 고립의 쓰라림을 자인하고 초등학교부터 2,000자를 가르치는 것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70년 이후 우리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한자가 아예 등장하지 않고, 학교재량에 의해 특별활동 시간을 정하면 한자공부를 할 수 있다. 중고교에서는 국어교과서에 한문을 병기하고 한문시간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의 반작용으로 학원이나 민간봉사단체에서 한문교육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지난해 9월 발표된 한 시험결과는 우리 한자실력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전국 49개 대학 61개 학과 졸업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한자4급시험(한자 1,000자의 훈과 음을 알고 500자를 쓸 수 있는 검정시험) 결과 평균 29.5점이었고 50점 미만이 89%를 차지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5%가 「한자교육이 불필요하다」고 대답했으나 85%는 「절실하다」고 답했다.
한국어문회는 공개서한에서 초등학교 6년간 국어교과서에 1,000자 정도를 혼용(병기)하고, 중고교 국어교과서에는 한자를 그대로 노출시킬 것을 건의하고 있다. 국한문 혼용의 범위에 대해서는 실용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사회적 컨센서스가 필요할 것이지만, 한자교육은 일시적 혼란이 따르더라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사전을 펴보면 우리말이 얼마나 한자와 뗄 수 없는 관계인가를 느끼게 된다. 한자교육 강화는 이러한 우리말 교육의 국적을 찾고 동북아가 함께 이뤄 갈 새 세기의 문화경제에 발맞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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