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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용궁에서 나오라/이호철 경원대 교수·소설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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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용궁에서 나오라/이호철 경원대 교수·소설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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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한파로 인한 실업공포가 우리사회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아무려면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하는 소리가 있지만 그런 옛말이 먹혀들기에는 지난 30∼40년간에 우리가 분수 안맞게 맛들여진 것이 너무 많고 본시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양태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멀리멀리 벗어져 나왔던 것이 아닐까. 인당수에 몸던진 심청이 바닷속 용궁으로 들어갔듯이 우리도 그렇게 와장창 용궁으로 들어갔던 것이 아닐까. 단 잠에서 깨어보니까, 그게 모두가 남의 빚 끌어다가 흥청망청 놀아났던 것이다. 어이가 없는 것으로 치면 이 이상 어이가 없을 수가 없다. 그동안 「세계화」라나 「국제화」라나 하고 주야로 떠들어댔던 것이 말짱 인당수에 몸 던졌던 심청의 바다밑 용궁 속 놀음이었던 것이다.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40년 전만해도 매년 보릿고개를 허덕허덕 넘어야했고 봄 되면 산의 소나무들이 발가벗겨져 허옇게 맨살을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달라지더니 지난 10년여간에는 곤두박질을 치듯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닷속 용궁 속으로 기어들었다. 70년대만 해도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초인적인 일을 해내어 온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우리가, 어찌 된 셈인가. 요즈막에는 필리핀이다, 파키스탄이다, 인도네시아다, 스리랑카다 하는 나라들에서 근로자를 모집해다가 쓰면서 「자가용 1,000만대 돌파」라나 어쨌다나 흥청망청 놀아나며 우리 모두가 송두리째 거의 발광 직전까지 가있었던 것이다.

이번의 IMF한파에 따른 실업공포는 어쩔 것인가. 듣자하니 지난 연말에 보너스는 커녕 본봉도 못받은 여러 중소기업 사원들도 많다. 그러나 여느때보다도 도리어 더 일찍 출근을 하여 아무소리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같은 사무실 동료지간에도 IMF니 뭐니 그따위 소리는 누구 한사람도 삐끗 입 밖에도 내지 않더라는 소리를 전해들으며 필자는 새삼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러는 그 본인들의 초조한 속마음이 어떻겠는가. 사무실 동료로 지금은 비록 같이 이웃해 앉아있지만 이중에서 누군가는 솎여 조만간에 실업자가 될 판이다. 서로가 사생결단의 싸움인 것이다. 그 삼엄함을 숨긴 채 각자 일에만 몰두하는 그 정황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1년전만 해도 봉급이 안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보너스 적다고 머리띠를 두르고 악을 썼던 사람들이 갑자기 저렇게도 얌전해진 이유가 과연 무얼까. 그야 뻔할 뻔자, 그들도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불가항력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손, 그렇게까지 소심하게 전전긍긍해야할 이유까지 있을까. 「실업급여 최장 6개월지급」이라는 응급조치가 우선 발등의 불은 꺼줄 것이라서가 아니라 사실 우리네 속담대로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 한가지만은 이 자리서 필자가 자신있게 장담할 수가 있다.

요컨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문제인 것이다. 저 한국전쟁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 그 환란도 겪어냈는데 그것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 정도 갖고 소심하게 전전긍긍한다면 필자 눈에는 아직도 반은 엄살로 보인다. 조금은 우습다.

필자는 50년 12월에 북한 땅 원산에서 18세의 소년으로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 단신 월남했다. 당시 부산시 사회과 주관으로 1주일쯤 이북 피난민으로 관리당하던 나는 아이들 딱지쪽 같은 피난민증 하나와 쌀 다섯되, 요즘 돈으로 환산해서 1인당 1만원 정도나 될까하는 돈을 받고 나왔다. 그때부터 부두노동이며 공장일꾼이며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며 뒹굴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런 일자리나마 있다는 것이 그 이상 천행으로 요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다른 길이 없다. 끝내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뜻이 서면 길은 뚫리게 마련이다. 우선은 각자의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바닷속 용궁 속의 기억이나 거품」을 진정으로 걷어내느냐, 못 걷어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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