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농꿈꾸는 첩첩산중 ‘사이버농부’/세아들 전인교육 위해 94년 전격귀농/재배·수확·출하 등 컴퓨터관리시스템 도입/무공해농산물 판매·수금은 온라인·홈뱅킹으로/이젠 새집짓고 트럭 등 갖춰 어엿한 전업농가첩첩산중 외딴마을에서 「사이버 영농」의 꿈을 안고 제 2의 인생을 살아간다. 태백산맥의 줄기가 힘차게 뻗어내린 해발 1,577m의 계방산 자락.
행정구역이 강원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인 이곳은 웬만한 농민도 살아가기 힘든 오지이다. 여기에서 4년째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는 이종상(41)씨와 그의 부인 구명회(43)씨는 요즘 눈속에 갇혀 살면서도 사이버 영농의 새싹이 돋아날 봄을 기다리고 있다. 40여호가 옹기 종기 모여 사는 마을 사람들은 계방산에서 하늘아래 첫 집인 이곳을 「서울댁네」라고 부른다.
구씨는 중앙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미국 멤피스 신학대학원까지 수료한 뒤 서울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다 94년 봄 귀농을 선택했다.
친척 등 주변사람은 물론 남편까지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유학 시절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구씨는 『벽돌 찍어내듯 하는 도시의 교육체제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될 수 있으면 산속 깊이 들어가 살자』고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들 교육은 차치하더라도 생활터전인 서울을 떠나 산간오지에서 경험도 없이 농사짓다 보면 끼니마저 해결하기 어렵다』며 「산행」을 만류했다. 기대를 걸었던 정부의 귀농 지원정책도 30대 전후의 대규모 기업농 희망자 위주여서 도움이 못됐다.
일선 농촌지도소의 귀농상담실에 문의해도 『최소 5㏊(1만5,000평) 이상의 넓은 농토가 없으면 귀농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구씨의 일관된 「전인교육론」에 설득당한 남편은 마침내 집판돈과 퇴직금으로 1억원을 마련해서 흙으로 돌아갔다. 땅값이 싼곳을 찾아 마을에서 무려 7㎞나 떨어진 곳을 물색, 밭 7,500평을 4,000만원에 샀다. 집은 폐농가를 뜯어고쳐 지었고 비닐 하우스도 손수 만들었다.
서울댁 가족의 하루는 컴퓨터로 시작한다. 유망 중소기업의 관리부장직을 내던진 남편은 아랫마을 농민들과 공동 생산한 유기농산물 「두메잡곡」의 온라인 판매 상황을 점검한다. 부인은 홈뱅킹으로 수금된 판매대금을 계산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 은하(10)군과 1학년에 진학하는 영하(8), 막내 주하(5)군 등 3형제는 컴퓨터 게임 삼매경에 빠진다. 시외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2시간이나 걸리고, TV조차 나오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컴퓨터야말로 서울댁네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가교가 되고 있다.
구씨는 『아이들이 귀농 첫해 서울로 돌아가자며 투정을 부릴 때 마음이 아팠다』며 『그러나 지난해 배추와 황기 시금치 등을 처음 수확한 뒤에는 산골생활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식구들이 밭일을 하다 힘들어 하면 바이올린 연주로 격려했다. 아이들도 처음보는 식물과 풀벌레의 이름을 차츰 익히기 시작했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는 재미도 붙였다. 그러나 귀농의 낭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96년 힘들여 재배한 고랭지 채소값이 과잉생산으로 폭락, 2,000만원 이상의 작물을 150만원에 처분해야 하는 괴로움을 겪었다. 서울댁네는 이때 농가의 재배현황 등 영농정보의 중요성을 절감, 사이버 영농화 작업에 착수했다.
컴맹이던 이씨는 쪼달리는 생활비를 쪼개 PC통신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장만했다.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의 「농업정보교육원」을 찾아가 부인과 함께 경영정보화교육도 이수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농림수산종합정보망인 「아피스」(AFFIS)는 최신 영농기술과 농산물 가격정보 등을 한눈에 보여줘 큰 도움이 됐다. 부부는 이 정보를 이용, 고지에 적합한 냉상하우스 기법을 고안해 냈다. 냉상 하우스는 한여름 차광막 등을 이용, 실내 온도를 섭씨 25도 이하까지 떨어 뜨려 시금치 상추 등 호냉성 채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 평야지대에 비해 작물생산성이 떨어지는 저온고지대의 불리함을 역으로 이용한 최신 영농기법인 셈이다.
지역농민과 공동으로 재배한 흑미 기장 등 550개의 무공해 농산물인 「두메잡곡」 온라인 판매 코너도 개설, 중간유통과정없이 도시민과 직거래하고 있다. 특히 고랭지 채소의 파종·재배·수확·출하관리 등을 컴퓨터로 전산처리하기 위해 「채소농가 경영관리시스템」을 도입, 영농 경비를 크게 절감했다.
이같은 사이버 영농기술 도입으로 이씨가족은 귀농 3년만인 지난해 1억원을 들여 현대식 조립주택을 짓고 경운기와 트럭 등 농기계도 갖춰 어엿한 전업농가가 됐다. 이씨는 『중간유통업자들의 고질적인 횡포에 IMF한파까지 겹쳐 사료와 비료값이 크게 올라 농촌현실이 더욱 어려워 지고있다』며 『농촌도 정보화를 통한 영농혁신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샐러리맨들의 대량 실직사태로 귀농희망자가 늘고 있으나 재배농지의 입지조건과 작물의 수익성, 가격 경쟁력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덤벼들면 실중팔구 실패하기 쉽다』고 충고했다.<평창=홍덕기 기자 hongdk@korealink.co.kr>평창=홍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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