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의 고향은 황해도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경복고에 다녔는데, 그 시절 학교에는 교내백일장이 있어서 글재주가 있는 학생들이 솜씨를 뽐내 볼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 심사위원장을 「북간도」의 작가 안수길 선생이 맡아 문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해 냈는데, 황석영도 그중 하나였다. 안선생은 백일장에서 1등을 한 황석영의 글에 반해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그는 2학년 때 『이 학교에서 더 배울게 없다』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대학입시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교실이 문학에 빠진 학생에게는 지옥이나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 후 그의 행적은 동창들에게서 끊겼다. 그가 다시 친구들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장준하 선생이 만들던 월간 「사상계」에 입선작으로 발표된 등반소설 「입석부근」을 가지고서였다. ◆그것이 열아홉살 때였다. 그는 그 사이 무전여행으로 전국의 산과 강, 절간과 시장과 윤락가를 떠돌았다. 체험 없이는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이 그의 문학생리였기 때문이다. 대학도 다니는둥 마는둥 부둣가 막노동에서부터 탄광 인부까지 사회의 밑바닥을 안해 본 것이 없이 훑고 다녔다. ◆해병대에 지원해 월남에 갔던 것도, 법을 어기고 북한에 간 것도 그의 이런 치열한 작가정신이 그 동기였을 것이다. 황해도가 주무대인 소설 「장길산」을, 그는 스스로 『미완성 작품』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현장을 밟아 보지 못하고 썼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를 감옥에서 꺼내 우리 시대의 명작 「장길산」을 완성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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