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중기인,목동에 이색공간 마련/바둑 장기·각종 구직정보지 비치/3천원 “실비” 하루종일 이용가능「일자리를 잃어 갈 곳 없는 분들은 여기서 마음편히 쉬세요」
기업의 연쇄부도와 대규모 감원사태로 거리를 헤매는 실직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쉼터가 등장했다.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목3동에 문을 연 「IMF 모임터」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는 40여평의 실내에 30∼40명이 편히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등의 집기들이 오밀조밀 배치돼 있다.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일간지 십여종이 비치돼 있고 케이블TV와 바둑·장기용품, 커피자판기 등도 갖춰져 있다. 또 이력서용지, 인력은행 소식지, 생활정보지와 정보검색을 위한 컴퓨터도 설치돼 각종 구인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하루 이용료는 3천원. 직장인들의 업무시간에 맞춰 평일은 상오9시부터 하오7시까지 문을 열며 토요일은 하오3시까지 운영하고 공휴일은 문을 닫는다. 점심식사는 인근식당과 협조, 3천원에 실비로 먹을 수 있게 했다.
7일 이곳으로 「출근」한 7명은 모두 최근 직장을 잃은 30∼40대들. 중견기업인 N사에서 지난 연말 정리해고된 윤모(38)씨는 『아침마다 가족 보기가 미안해 집을 나서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고민했는데 이런 공간이 생겨 다행』이라며 『이들과 동병상련하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면 서로 위안도 받고 정보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IMF모임터」를 개원한 이성희(36)씨도 최근 중소 사무용품 제조업체 「하나로 시스템」을 운영하다 지난해 2억원의 부도를 내고 폐업한 실직자. 그는 『일터를 잃은 뒤 반년동안 한강시민공원, 기원, 다방, 변두리 극장, 산 등 안가본 곳이 없지만 실직자들이 편히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쉼터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집에 있자니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한강시민공원에 차를 대놓고 하루종일 신문을 보고 있자니 기름값감당하기 힘들고, 다방을 전전하며 앉아 있자니 주인 눈치 보이고…』
자신의 회사 사무실을 개조, 우선 실직자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쉴 공간을 마련한 이씨는 앞으로는 업체의 구인설명회도 유치, 손님들의 재취업도 적극적으로 도와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정작 이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소망은 하루빨리 「IMF 모임터」가 문을 닫고 모두가 직장으로 돌아가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02)6497663<유병률 기자>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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