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 건너 또 한집 ‘떡빚는 마을’/새벽 2∼3시면 집마다 불밝혀/열목어사는 논에서 거둔 찹쌀로/흰눈같은 밥을 짓고 떡메를 쳐서/무공해 진짜 인절미를 만든다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음식문화는 떡과 관련이 깊다. 토기에 곡물을 쪄서 손으로 뭉쳐 먹던 원시적인 형태에서 시작됐다는 떡은 때로는 밥 이상의 의미를 지니면서 긴요한 먹거리로 발전해왔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떡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고서에 나오는 조선시대 떡 이야기를 보면 이미 인절미와 송편, 시루떡 등을 만들어 팔았고 종류도 꽤나 다양했다. 절기에 따라 설날에는 흰떡과 떡국, 단오에는 수리취떡과 쑥떡, 한가위에는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냈다. 세모와 세시에는 붉은 팥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내고 이웃끼리 나눠 먹었다.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되면 백설기를 쪄서 백집에 돌리는 풍습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쓰임에 따라 종류만 무려 20여가지나 됐다.
그러나 떡은 밥에 비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처럼 주로 제례나 잔치 때 기복의 의미로 쓰이며 일상의 먹거리와는 구별되기도 했다.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면 며칠씩 떡을 쳐 마을 전체가 나눠먹고 먼 일가 친척에까지 보냈다. 명절 때 집집마다 떡을 해 온 마을에 돌려 「남의 떡으로 명절쇤다」는 것이 우리의 떡인심이었다.
강원 양양군 서면 송천마을은 보기드문 떡마을이다. 남설악 자락의 송천계곡을 비스듬히 내다보고 앉은 마을은 전체 스물아홉 가구 중 떡집이 열여섯에 달한다. 그 내력 또한 20년을 넘는다. 새벽 2∼3시면 집집마다 부엌에 불이 켜지고 4∼5시면 사방에서 철석철석 떡치는 소리가 계곡의 아침을 연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떡을 빚어 팔러나갈 준비를 하는 사이, 여인네들은 서둘러 학교 갈 아이들과 집에 남는 식구들의 아침상을 차린 후 떡그릇을 이고 집을 나선다. 6시30분 마을 앞을 지나는 새벽 첫차에 올라탄 송천 떡마을 아주머니는 낙산사를 비롯, 설악동 일대 관광단지, 새벽 어판장 등을 돌며 떡을 판다.
민속떡집(03966724316)의 탁영길(59)씨 부부도 올해로 16년째 떡장사를 해오고 있다. 이 집의 소나무 떡판은 대를 물려온 것으로 100년이 훨씬 넘는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떡은 대개 인절미지만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수리취와 쑥을 넣기도 하고 떡고물을 콩과 팥, 녹두 등으로 무쳐 같은 인절미라도 맛이 다양하다. 인근 지역사람들은 송천마을 인절미를 「무공해떡」 「진짜떡」이라고 한다. 마을 앞 계곡에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9만 여평의 논에 찹쌀만을 심어 모두 떡감으로 쓰는데 열목어가 오를 정도로 맑은 물과 신선한 계곡바람 탓인지 농약 한번 치지 않아도 농사가 잘 된다. 큰 솥에 장작을 때서 뜸을 들인 찰밥을 떡메로 힘있게 쳐내기 때문에 기계로 뽑은 떡과는 풍미가 다르다. 도시에서도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 이곳 사람들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도 모르고 지낸다. 떡을 주문하면 우편이나 택배로 보내준다. 인절미는 반말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은 4만원. 3일까지는 떡이 굳지 않아 그대로 먹을 수 있고 굳은 다음에 두고 먹어도 된다. 겨울철 인절미는 차게 굳혀놓았다가 석쇠에 구어 조청이나 꿀에 찍어 먹는 맛이 더욱 각별하다.
◎찾아가는 길/홍천→구룡령 샛길 이용/한계령 넘어가는 방법도
송천마을은 가는 길이 좀 멀다. 홍천에서 구룡령을 넘는 샛길을 이용하거나 한계령을 지나 양양으로 내려가다 송천으로 빠진다. 마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양양에 도착,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가족이 함께 가서 민박을 하며 직접 떡을 만들어 갖고 올 수도 있다. 1박 1만5,000∼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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