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역화합 새 지평을 위하여/문병란 조선대 교수(아침을 열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역화합 새 지평을 위하여/문병란 조선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8.01.08 00:00
0 0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지역감정」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감정, 정서와도 다르고 지방색이라 말하는 컬러와도 다르고 또 그 지방 특유의 풍속, 문화, 성정하고도 다른 이 용어는 「대결」이라는 말이 옳을 듯 싶다.대결 속에는 으레 패자와 승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지는 쪽이 이기는 쪽에 가지는 감정은 한이라는 앙금이 남는다. 60년대 이후 영·호남 정치구도 대결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은 그 지역 출신 대통령후보에게 몰표를 던진다는 비민주적 현상이었다. 박정희·윤보선 대결 때만 해도 반반이었던 이 지역도 박정희·김대중 대결이 시작된 70년대 이후 줄곧 오늘에 이르기까지 4명의 대통령을 뽑은 긴 세월동안 DJ와 반DJ에 몰표를 던지며 대결을 벌여온 것이다. 특히 80년 「5·18」 피의 항쟁 이후엔 DJ의 복권과 더불어 87년, 92년 90%몰표의 강력한 대결의식을 보였고, 금번 선거에서는 무려 98%라는 초유의 기록을 나타냈다. 이런 대결구도가 40년간 계속되다 보니까 산 하나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살면서 두 지역의 감정의 응어리가 심상치 않은 증세, 무서운 집착에서 연유되는 병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만약 이것이 정말 병이라 한다면 민주주의에선 치명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 지역의 정치적 대결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병으로까지 발전한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그 병을 치료할 처방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올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 이 병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 원인중 가장 큰 것이 지역차별이었다. 말하자면 지역감정의 다른 이름이 「지역차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역사적으로 거론되는 「호남 푸대접」에서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소외는 천년한을 지녔으며, 80년 군부세력에 의해 행해진 「5·18의 인권유린」사건 역시 그 차별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바로 정치적 차별과 소외가 이 지역의 저항을 낳았고 원한을 심어주었고 대결의식을 갖게 했으며 그 원한의 앙금이 바로 98%의 몰표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98%는 분명 역사적 의의가 있고 이유가 있고 정권교체의 에너지로서의 당위성을 가질 것이다. 그 민주적 당위성이 민심, 천심이 되어 신승이나마 정권교체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면 80%몰표에 나타난 영남의 여권선호는 어찌할 것인가. 지역대결 후유증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반DJ표에 대한 처방은 오로지 경상도 사람들의 자세와 차기대통령인 DJ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할 것이다.

호남지역은 승리했지만 98%라는 몰표를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일은 마지막이라고들 말한다. DJ에게 베푼 마지막 연민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15대대선으로 몰표시대는 끝난 것이다. 따라서 몰표시대를 만든 장본인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등 5·16과 5·18세대들이 마지막 벌인 지역대결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이 지역대결의 마지막 승자인 DJ가 치명적인 「지역병」을 치유할 해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 업보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선거에서는 승자에 던진 표보다 반대자의 표가 더 의의가 있다. 호남지역도 지난 40년간 반대표로써 민주주의를 외쳤고 지켰다. 필자는 대선직후 대통령 당선자께 당부할 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반대표를 생각하는 대통령이 돼야한다고 대답했다. 반대표, 즉 낙선자가 얻은 표가 적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반대표를 무서워하고 의식하는 대통령은 결코 실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지역 사람들은 승리에 대해 자만하거나 DJ에게 어떤 특혜도 바라지 않는다. 차별만 않는다면 그만이라고 한다. 혹자는 한 지역이 계속 대권을 계승하는 것보다 다음에는 다른 지역출신이 자연스럽게 계승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대권의 지역윤번제도 하나의 처방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경상도 끌어안기」는 선도적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쪽에서 끌어안으면 그 쪽에서도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감정을 넘어 그 벽을 허무는 일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분이고 이 민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더욱 더 경상도 끌어안기에 무게를 두어 민족화합의 장을 열어주기 바란다.<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