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고찰 개심사/옛병영이자 김대건순교성지인 해미읍성/가야산 자락따라 한바퀴 돌아본후/덕산온천서 지친다리 휴식국제통화기금(IMF)한파에 살얼음판을 걷듯 연말을 보내서일까 새해를 맞는 마음 역시 스산하다. 이럴 때일수록 숱한 역경을 헤치며 의연히 삶의 자리를 지켜온 조상의 지혜를 배우는 답사여행을 떠나보자.
가야산을 한바퀴 휘감아 내륙으로 들어앉은 충남 내포땅은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터, 개심사, 해미읍성을 비롯한 문화재와 내륙지방의 독특한 맛을 함께 할 수 있어 답사여행의 묘미를 안겨준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계곡에 자리잡은 서산 마애삼존불은 찾아온 사람들을 은은한 미소로 반긴다. 암벽을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전각에 모신 것이 마애석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을 모셨다. 제작시기는 6세기말 내지 7세기 초. 백제시대 중국과의 교역의 중심지였던 태안반도에서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신비스러운 것은 부처의 표정이 빛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빛이 없을 때는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엄한 모습이지만 빛이 비치면 어느새 얼굴 가득 자비로운 미소가 피어오른다. 지금은 전각에 모셔져 자연적인 빛의 조화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딸의 손을 잡고 마애삼존불을 찾은 한 40대 가장은 전각 앞을 떠나지 못한다. 은은한 그 미소를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듯 보채는 딸의 손을 잡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존불의 미소는 어찌보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간절한 염원을 담아 바라보는 이에게는 위안과 자비를 주는 것이 아닐까.
마애삼존불에서 계곡 쪽으로 들어가면 백제 때 창건하고 고려시대 번창했던 보원사터가 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폐사지지만 황량함보다는 안온함이 주위를 감싼다. 현재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고려시대 국사였던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가 남아있다.
운산에서 해미쪽으로 7㎞를 가서 신창리로 접어들면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한가로운 초지와 사과밭, 저수지, 잡목이 우거진 좁다란 산길로 풍경이 수시로 바뀌어 오르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단정한 품위가 돋보이는 개심사 대웅보전은 몇 안 남은 조선 초기(1484년)의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조선 초 요사채의 전형을 보여주는 심검당(1477년)은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대담함과 자연스러움이 교차한다. 맑고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개심사에서 숨을 고르고 해미읍성으로 향한다.
개심사에서 신창리로 나와 674번 도로를 따라 5㎞를 가면 해미에 닿는다. 조그만 시골 면소재지인 해미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마을을 따라 둘러쳐진 해미읍성이 있기 때문.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전북 고창읍성과 함께 가장 보존이 잘 된 유적이다. 해미는 조선조 서해안 방어의 군사요충지였다. 해미읍성은 서해안을 지키는 수군병마절도사영으로 성종 22년(1491년)에 완성됐다. 이순신장군이 한때 교관으로 머물렀다고 한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 모양으로 둘레 길이가 2㎞, 넓이는 대략 2만여평에 이른다. 진남루 아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옛 관아자리에 동헌과 객사를 복원해놓았다. 동헌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 중 훌쩍 키가 큰 나무가 눈에 띄는데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김대건신부가 순교한 자리다. 성벽에 드리워진 담쟁이 덩굴을 따라 선인의 자취를 더듬어본다. 성벽의 돌 하나하나에도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선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가야산 자락을 한바퀴 돌아보는 하루 답사길은 덕산 온천에서 끝을 맺는다.수질도 좋고 숙박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주변에 윤봉길의사 고택과 충의사가 자리잡고 있어 내친 김에 여정을 더 늘려도 좋다.
◎맛있는 집/구수하고 소탈한 게꾹지백반 푸짐/개심사인근 미꾸라지어죽도 일품
서해안의 황금어장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거느린 서산은 옛부터 굴과 꽃게 산지로 이름높았다. 가을에 담근 게장을 겨우내 먹고, 남은 국물로 끓여 먹는 「겟국찌개」는 서산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서산말로는 「게꾹지」라고 한다. 서산시청앞 광장 근처 진국집(04556657091)에서 서산고유의 「게꾹지 백반」을 맛볼 수 있다.
숭숭 썰어 소금에 절인 시래기배추와 우거지에 고춧가루를 풀고 게장국물을 넣고 끓인 겟국찌개는 서산사투리처럼 구수하고 소탈한 맛이다. 겟국찌개와 된장찌개, 계란찜, 북어조림을 모두 뚝배기에 담아내 상 하나 가득 뚝배기 잔치가 벌어진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나물까지 따라나와 나물 잔치도 곁들여진다. 새빨간 어리굴젓과 싱싱한 파래무침도 빠지지 않는다. 겟국찌개는 대장을 깨끗이 비워주는 효과가 있어 서산사람들 중엔 쾌변을 위해 정기적으로 진국집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값은 4,000원.
충청도 내륙지방의 독특한 맛은 개심사 주차장 앞 가야산장(04556884255)의 「미꾸라지 어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근 삼화목장의 신창저수지에서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를 가야산의 약수에 끓여 국물을 내 몸에 더할나위 없이 좋다. 죽이라고 하지만 쌀대신 통밀국수를 곁들이는 것도 특이하다. 추어탕과 칼국수의 장점만 결합한 「얼큰시원한」맛이 독특하다. 값은 4,000원. 메기매운탕과 토종닭백숙(3인분 2만원)도 있다. 민박도 겸한다(1박 1만5,000원).<서산=김미경 기자>서산=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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