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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인의 표류자’/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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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인의 표류자’/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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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끝무렵, 태평양을 지나던 미국 여객선이 기뢰에 부딪혀 침몰했다. 목숨을 건진 27명의 승객이 고무보트 한 척에 몸을 의지했다. 그들은 생명을 연장할 만큼씩만 먹어도 며칠 밖에 견딜 수 없는 식량만 가지고 있었다. 위치를 알 수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텨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보트도 많은 사람이 오래 타기에는 비좁고 약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처절한 노력을 하던 선장은 마침내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치」를 선언했다. 『스스로 육지를 찾아 헤엄쳐 나갈 경우 우선적으로 일정량의 식량을 떼어 준다. 노를 젓거나 고인 물을 퍼낼 힘이 없는 부상자와 환자는 배 밖으로 내보낸다. 노약자도 예외가 아니다』 몸집이 유난히 커서 자리와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흑인이 타고 있었다. 백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물을 퍼내고 노를 저어 보이며 자신의 필요성을 과시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배 밖으로 뛰어 내려 옆에 달린 끈을 붙들고 가겠다고 했다. 어느 노부부는 식량을 받아들고 자진해서 육지를 찾아 나섰다. 승객 대여섯이 모의를 해 보트를 독차지 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 선장이 그들을 진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 선장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라 자진해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스스로 미아가 될 것을 두려워한 승객들이 선장은 예외라며 억지로 그를 구조해 보트에 태웠다. 그렇게 살아남은 20여명은 지나가던 화물선에 의해 구조됐다. 선장은 일부 승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자막으로 끝나는 60년대 미국영화 「27인의 표류자」 내용이다.IMF구제금융 이후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한창이다. 기업이 침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게되는 다수의 구성원을 살리기 위해 「생사람들」이 기업 밖으로 뛰어내려지고 있다. 일정 퇴직금을 받고 스스로, 혹은 전체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강제로.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은 선장의 「무죄」쪽으로 기울었다. 그가 27명 전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원칙을 정하고 철저히 지켰으며, 자신의 부상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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