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서 96세 할아버지까지… 그리고 해외에서 문단등용문엔 열기가 넘쳤다/구두닦이… 13년만에… 숨은 사연들도 다양/재치를 못따라가는 힘/‘재승력박’ 세태는 숙제로작가·시인 지망생들에게 신춘문예는 바로 열병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글로써 자신의 삶을 세우겠다는 이들에게 신춘문예는 당선자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것같은 환희를, 낙선자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큰 낙망을 준다.
98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입증됐다. 응모자 중에는 붉은 원고지 빈 칸들을 깨알 같은 연필 글씨로 메워온 초등학교 4학년생부터, 동화 부문에 원고를 보내 온 한 아흔 여섯살의 할아버지까지 있었다. 특히 해외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한국일보의 특성상 항공우편으로 수많은 원고들이 투고돼 와, 우리 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동포들의 뜨거운 가슴을 느끼게 했다.
이제 당당한 문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될 당선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당선자 중 최연소인 시 부문 손택수(28)씨는 올 국제신문 동시 부문에 함께 당선돼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는 학교 야간수위 일에 안마시술소 구두닦이 때밀이로 학업을 계속하며 문학에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설 당선자 이수경(40·본명 이영숙)씨는 부부가 다같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하게 돼 문인 일가를 이루었다. 일찍이 남편(47)과 함께 문학의 한 길을 걷기로 했던 이씨는 남편이 등단한 뒤 13년만에 꿈을 이뤘다. 동시 당선자 김희정(29)씨는 초등학교 때 이미 동시집을 내며 「천재」란 말을 듣던 꼬마시인이었으나 막상 신춘문예란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16년이 걸린 셈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열기, 당선자들의 입지전적 삶과는 한편으로 응모작들의 전반적 수준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아쉬움을 느끼게도 했다. 문학의 위의가 갈수록 약해지는 시대 분위기, 움츠러든 사회 분위기의 탓도 있겠지만 응모자들의 자기수련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소설 부문에서 심사위원들은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아직도 소설을 신변잡사에 관한 넋두리 혹은 섣부른 감상을 토해놓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90년대 소설의 주류를 이루다시피한 소위 내성소설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소설 당선자 이수경씨의 말은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얼마동안은 내 이야기만을 썼던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정도 거기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그동안의 낙방은 나에게 가르침이 되었고, 오히려 너무 이른 나이에 등단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최근 한 중진문인은 요즘의 문학 풍토를 「재승역박」, 재치는 넘치는 데 힘은 부치는 형상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신춘문예 지망생들이 더욱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도 『이 어려운 때, 따뜻한 영혼이 속삭여 주는 시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98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15일 하오 3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린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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