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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견문록/유재건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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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견문록/유재건 편찬

입력
1998.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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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이 펼치는 조선사/중인·서민층 인물 287명/학행·문학·충효 등 세분/그들의 전기적 기록 모음집/1862년 유재건이 편찬『천재화가 칠칠 최북(1751∼?)은 본래 술을 즐기고 유람하기를 좋아했다. 술 마시는 것은 항상 하루에 대여섯 되에 이르렀다. 가산이 궁해져 평양과 동래를 떠돌며 그림을 그려 파니 값진 비단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자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산수를 그려달라 청했는데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따지자 칠칠은 「어허, 종이 밖은 모두 물이잖소」라 했다. 그림이 잘 됐는데도 그림값이 적으면 화내고 욕하며 그림을 찢어 없애버렸고, 그림이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값을 지나치게 가져오면 깔깔거리며 내쫓았다가 다시 불러 웃으며 「그 녀석, 그림 값도 모르는구나」라고 했다』

겸산 유재건(1793∼1880)이 1862년 편찬한 「이향견문록(향리에서 보고들은 기록)」은 이런 식으로 조선조 중인과 서민층 인물 287명에 대한 전기적 기록을 한 데 모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집에서 발췌해 수록한 것도 있고 자신이 직접 쓴 것도 있다. 인물은 학행, 충효, 지모, 열녀, 문학, 서화, 의학·바둑·잡예, 승려및 도가류 등의 부문으로 나눠 배열했다. 엄숙주의에 물들지 않은 당시 보통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장대하게 펼쳐져 가히 인물로 보는 조선의 이면사라 할 만하다.

유재건은 규장각 서리를 지낸 인물로 당대의 유명한 중인 출신 시인, 예술가들과 함께 서울 사직단 아랫마을에서 문학살롱격인 「직하시사」를 결성, 폭넓은 교유를 했다. 조희룡이 쓴 「이향견문록」 서문은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겸산은 흉금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 남의 좋은 일을 즐거워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모두 그물질하듯 끌어모았고, 그 언행, 그 시문 밖에 한 가지 재주, 한 가지 능력이라도 모두 특별히 기록하였다』

명종때 천문 교수를 지낸 대예언가 남사고에 대한 기록을 보자. 『울진 사람으로 역학에 조예가 깊었고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능했는데 모두 세상에 전하지 않는 비결을 얻은 것으로, 말을 하면 반드시 적중했다. 명종 말년에 사람들에게 「사직동에 왕의 기운이 서려 있으니 성군이 그 동네에서 날 것이다」고 했고 일찍이 동쪽으로 낙산을 가리키고 서쪽으로 안현을 가리키며 「후일 조정에 반드시 동서의 분당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장차 왜변이 있을 것 같은데 진년에 일어나면 그래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나 사년에 일어난다면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는데 과연 정묘(1567)년에 선조가 사직동 잠저에서 대궐에 들어와 대통을 이었으며 을해(1575)년간에 조정에서 동서분당이 일어났고 임진(1592)년에는 왜란이 일어나 8년만에 평정됐다』 이 책은 성균관대 국문과 김시업 교수 등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원들이 처음 번역한 것으로 구두를 찍은 원문도 붙였다. 민음사 발행, 3만7,500원.<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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