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7일 김 대통령에 “근본적 수술 필요” 충고 전화/12월18일 립튼 급파루빈 위기해소방안 논의 등 급박/미 구조의지 전세계에 전달 12월24일 마침내 ‘지원’ 발표시사주간 타임은 최신호에서 한국 금융위기에 관한 미국의 입장변화 과정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타임은 한국경제가 미국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이 구조활동을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위기해소를 위해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임은 한국사태를 계기로 국경보다 통화가 우선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편집자주>편집자주>
지난해 12월18일 저녁.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워싱턴 제퍼슨 호텔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 등과 만나 한국 금융위기 해소방안을 논의했다. 루빈 장관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은 몇달동안 한국의 위기상황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날 만찬은 전세계적 구조노력과 관련해 뒷전에서 맴돌던 미국이 전면에 나서는 전환점이 됐다.
크리스마스를 불과 7일 앞두고 열린 이날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사태와 관련한 첫번째 긴급지원을 약속했다. 미국 민간 은행들에 한국에 대한 채무상환기간연장 압력을 가하는 한편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에 대해서도 기존의 사업관행을 일신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휴가를 즐기던 고요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침내 구체적 계획이 발표됐다.
유일 강대국이라는 짐을 안고 있는 미국은 위기돌파 수단이 항공모함과 정예사단이 아니라 긴급 통화안정기금과 회계관행을 개선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내에서 이처럼 정교하면서도 새로운 수단을 조정하는 사람은 루빈 장관이다. 과거 50년동안은 JP 모건 같은 민간 은행들이 외국의 위기상황을 철저히 검토하면서 이런 작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더욱 새로워진 세계에서는 「외딴(Remote)」경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국 통화가 왕(King)인 유일 정부, 즉 미국만이 세계를 이끌 수 있다.
지난 여름 통화위기가 동남아를 강타했을 때만 해도 루빈과 다른 미국 관리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은 사실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경제는 미국의 이해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가 9월 한반도까지 퍼지자 루빈은 더이상 이 문제를 덮어둘 수 없게 됐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다섯번째 교역 파트너다. 그리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3만7,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에서 슬로베니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한국에 돈을 빌려주었다. 물론 어느 나라도 일본 은행만큼은 많은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은행기준으로 보면 일본 은행들도 각기 다양한 이유로 파산상태에 놓여 있다. 붕괴 도미노 현상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한국의 채무불이행 사태는 일본에서도 거대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게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미국 은행들도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루빈사단」은 아시아의 독감이 일본등 다른 시장에 전파되기 전에 봉쇄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의 부는 재벌(Chaebols)이라 불리는 몇몇 거대한 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도 많다. 이들 은행은 10년 넘게 모회사인 재벌들에게 자금을 빌려 주었고, 재벌들은 이를 무기로 전세계에서 위험한 투자에 나섰다. 결국 재벌들의 프로젝트들이 삐걱거리자 은행들도 덩달아 비틀거렸다. 해외 채권자들이 투자회수 움직임을 보이자 한국의 통화와 외환보유고도 위축됐다.
클린턴은 1년동안 도쿄(동경)는 물론 서울에 대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한국민들도 협조적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다. 몇달동안 한국민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산과 부채에 관한 회계를 공개하는 것도 꺼렸다. 김영삼 정부는 미국 관리들에게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조차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한국 정부가 IMF와 협상을 벌이는 동안 로렌스 서머스 재무차관이 외환보유고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로 달려갔다. 추수감사절(11월27일)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통화내용이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수주간 비밀로 유지했다.
이후 12월3일 IMF는 570억달러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발표했다. 한국은 보답으로 금융시장 개방과 무역장벽해소, 금융구조 개혁등에 동의했다. 의회의 반발을 우려한 미국은 단지 소액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미국 관리들은 여전히 한국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클린턴은 아시아 시장을 「사소한 고장상태」라고 불렀으나 고장은 더욱 심각한 상태가 됐다. 12월중순까지 매일 10억달러 이상이 한국을 빠져나갔다.
12월 18일 만찬 다음날 뉴욕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1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아시아의 경기후퇴가 미국 회사들의 소득을 위축시키고 장기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져나갔다. 이날 아침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100억달러도 채 안될만큼 떨어졌다. 열흘 정도 지나면 채무불이행 사태가 올 수도 있었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즉각 미국에 대해 추가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요청했다. 이날 저녁에는 서울과 도쿄에서 나온 최신 뉴스를 알리기 위한 전화가 제퍼슨 호텔 다이닝 룸에 빗발쳤다. 식탁 주변에서는 미국이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는 몇주전 「2차 방어선」 명목으로 미국이 약속한 직접구조자금 20억달러를 즉각 서울로 보내는 것을 뜻했다.
미국 관리들은 그러나 한국 대통령 선거로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 바로 이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루빈은 클린턴이 그날 저녁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건넬 구체적이고 정확한 메시지를 조정하기 위해 백악관과 접촉했다. 클린턴은 김당선자에게 헛디딜 여유가 없을 만큼 기회의 폭이 좁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당선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만찬 참석자인 데이비드 립튼 재무부 차관보를 이틀후 서울로 급파했다.
미 재무부와 IMF관리들은 이튿날에도 하루종일 구조 패키지를 마무리짓기 위해 일했다. IMF는 20억달러를 서울에 제공키로 했고, 미국과 일본 독일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80억달러를 추가지원키로 했다. 그대신 한국은 파산지경인 은행들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법안등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재무부 관리들은 긴급구조의 효과가 한국과 미국의 노동조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 단계는 미국의 이같은 확고한 결심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이었다. 12월21일 아침 소집된 회의에서 서머스는 선진7개국(G7)의 6개국 재무차관들에게 자국의 민간 은행들이 단기채무 상환만기를 연장하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3일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맥도나우는 6개 대형 은행 관계자들과 만나 서울에 대한 채권의 만기를 연기해 달라고 촉구했다. 은행들도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함께 가든지 아니면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비슷한 회의들이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파리 도쿄에서도 열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등 연말휴가 때문에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루빈과 서머스는 미국 투자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스키 리조트와 카리브해의 사교장을 가기도 했다.
한국이 협상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이행할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의 국회는 지난주 일련의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리해고제와 재벌구조 재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고 있다. 이는 놀랄일이 아니다. 지난해 1월 국회가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한국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맞서 3주이상 국가경제가 마비된 바 있다. 민주노총의 김영대 사무국장은 『우리는 한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어떠한 조치에도 결사 반대한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이 73세의 김대중 당선자에게 기대하는 것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김당선자는 지난주 타임과의 단독회견에서 『한국의 위기를 해결하고 국제신뢰도와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개혁을 단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기업간의 유착 때문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주 시민들에게 통화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집안에 있는 금을 기증할 것을 부탁했다. 김당선자는 타임과의 회견에서 『만약 노동자 해고가 필요하다면 이를 감행하겠다』고 말했다. 재벌에 대해서도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대신 주도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리=이종수 기자>정리=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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