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 등 “불공정 무역관행” 명목 민간캠페인도 제동『당장 외화 한 푼이 아쉽지만 정부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근의 소비절약 및 국산품 애용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칫 통상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
실제 과거 소비절약, 외제품 안 쓰기 운동 등이 통상마찰을 일으킨 예는 적지 않았다. 지난해 초만 해도 정부는 시민단체들이 막대한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 벌인 과소비추방운동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문제삼고 나서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과소비추방운동이 우리 정부가 개입된 사실상의 불공정 무역관행이자 비관세 무역장벽에 해당한다며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했다. 특히 유럽연합은 정부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국 언론들까지 나서 과소비추방운동이 차별적 시장관행이자 외국제품 불매운동이라고 몰아붙였다.
정부는 과소비추방운동은 정부와는 상관없는 순수 민간 차원의 운동임을 누누히 밝혔지만 결국 대폭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압력에 굴복해 민간의 자발적인 소비자운동에까지 간섭한다는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재경원 제2차관보가 직접 나서서 시민단체들에게 「온건한」 소비절약운동을 펼쳐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외제추방」이나 「국산품 애용」보다는 「건전소비」 등으로 운동의 방향을 맞춰달라는 요청이었다. 정부 자체적으로도 모든 정부 홍보물에서 「국산품 애용」, 「호화 수입품」 등 수입억제를 암시, 유도할 수 있는 말을 없애기로 하는 한편, 정부산하기관에서 시행하던 국산과 외국산 제품의 품질 비교평가도 중단했다.
과소비추방운동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외화절약, 국산품 애용 운동 등에 대해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순수 민간 차원의 국산품 애용운동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도 국산을 사용하자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또 워낙 상황이 위급하고, 국민 여론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과소비 추방운동 때처럼 무리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국산품 쓰기운동이 확산되고, 외국산 제품의 국내 점유율이 엄청나게 떨어지면 미국 등에서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등 외국 언론에서 최근의 외제불매운동에 대한 비판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우리 제품마저도 「눈치껏」 써야 하는 서글픈 시대가 됐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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