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변하지 않고선 사회를 개혁할 수 없고/경제의 발목을 잡고있는 독소들을 없앨 수 없다”춥다. 정신이 바짝 나도록 춥다. 소한 추위는 주워다가라도 한다더니 새해 첫 추위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아침.
춥고 배고픈 세월을 살아보지 않은 세대들이 과연 소한, 대한추위보다 더 추운 IMF한파가 몰아치는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할 것인가.
하지만 겁부터 낼 필요는 없다.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다리가 끊기자 온 가족이 다리를 걷어붙이고 손에 손을 잡고 겨울강을 건너 피란가던 세대들이 아직도 이 땅에 눈뜨고 살아있지 않은가. 그리고 봄은 온다. 「정의가 예찬받고 애쓴 만큼 대가를 받으며, 옳은 것을 위해 희생한 만큼 보상을 받고 평가받는 사회」는 봄처럼 온다.
김대중 차기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는가. 『국민에게만 고통을 떠 넘기지는 않겠다』고 신년사에서. 또 『바르게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이루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올해는 웬일인지 3김의 신년휘호를 주의깊게 보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해에 유시유종을 쓰더니 올해는 제심합력이라고 썼다. 시작과 포부만큼은 문민정부의 마무리를 잘해보겠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치자』니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일이다.
차기정부의 실세총리로 떠오르고 있는 김종필 명예총재의 선문답같은 신년휘호도 사유무애(생각에는 끝이 없다)인데 그분을 오랫동안 알고 있는 필자로서도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다. 오히려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살린다)이라고 한 DJ의 휘호가 앞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도탄에서 구해 내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어 가슴에 더 와 닿는 것 같다.
하지만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일이 경제주체의 노력이나 서민들의 근검절약 만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경제의 본뜻이 나라를 다스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정치발전, 정치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새해는 아무래도 불합리한 경제체제의 개혁과 구태의연한 정치체제의 개혁을 과감하게 이뤄가는 한해가 돼야 마땅하다.
정치개혁 없이는 국민화합도 사회통합도 공염불일 뿐이다.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는 사회전반의 개혁을 기대할 수가 없고 이같은 변혁 없이는 도저히 오늘의 난국을 풀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을 통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독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화급한 일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IMF에 약속한 경제구조조정 관련입법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지난 연말에 했으면 될 것을 국회는 그때 금융기관의 정리해고문제를 입법화하지도 않고 슬쩍 해를 넘겨 2월 임시국회로 떠밀어 놓았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공개매각을 앞두고 이미 자본금과 인원을 줄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판국에 국회 문을 다음달에나 열자고 한다면 정치권 불신이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엄청난 IMF태풍이 우리 숨통을 또 한번 조여올 것이 뻔한 일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늑장 피울 여유도 없다. 당장 내주에라도 국회를 열고 몰려오는 IMF한파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차기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이것도 김대중 당선자의 정치력에 대한 1차 시험대가 될 수 있으리라.
이제 할 일은 태산같고 시간은 없다. 2, 3월 중 치러질 부산 서구등 세 곳의 재·보궐선거를 챙겨야 하고 엄정중립을 지키되 소모적인 정쟁의 불씨부터 제거해야 하고…. 어쩌면 5월 지방선거가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지도 모른다.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이 또 다시 선거판을 뒤흔든다면 차기정권의 정체성은 그대로 퇴색되고 말 것이다.
또 한가지. 김대중 차기대통령이 피해갈 수 없는 길 하나가 눈앞에 놓여있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시작될지도 모를 이른바 DJP내각제 연대논의. 분명한 입장 정리와 선명한 대답없이는 넘을 수 없는 아리랑고개다.
여기에 무슨 왕도가 있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나아갈 길이 막히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기 위해선 과거의 잘못부터 되짚어 봐야한다.
5년전 화려하게 출발했던 김영삼정부가 왜 지금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는가.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앞으로도 가혹하리만치 엄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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