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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합의의 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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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합의의 길은 없나

입력
1998.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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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김대중 정권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당선자는 경제회생을 위한 정리해고제 도입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다. 김당선자는 1월중 임시국회를 소집, 국제통화기금(IMF)측 요구가 집중되고 있는 금융기관분야에 대해 우선적으로 정리해고제를 도입키로 하는 등 입법일정을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노동계는 정리해고제 도입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재계는 정리해고제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금융계가 첫 실험대상이 된다는 점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김당선자는 이번 주중 노·사·정 협의체를 발족시킨 뒤 이달말까지 고통 분담을 위한 「국민 협약」체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당선자는 이와함께 정부조직 및 인원의 축소와 재벌 개혁을 추진하는 등 고통분담을 위한 가시적 조치도 준비하고 있다.◎당선자측 구상/“난국타개 위해 시간놓칠 수 없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5일 국민회의 신년하례식 인사말을 통해 『금융산업 부문의 정리해고제를 2월 임시국회에서 도입키로 한 데 대해 외국에선 그때 할 것을 왜 지금 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갖고 있다』는 간접화법으로 정리해고제의 조속시행 방침을 밝혔다. 김당선자는 또 「고통분담을 통한 경제난국타개」 의지를 천명하면서 『시간을 놓치지 않고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정리해고제 단행시기가 빨라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언급은 정리해고제 조기도입등 당면현안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처리 해나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사실 김당선자는 이미 지난 연말부터 국제신인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도실시 등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아래 노동계를 설득하는데 공을 들여왔다.

김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나 행정개혁위원회 못지않게 노사정 협의체의 구성과 역할에 대해 역점을 두고 있는것도 정리해고제가 경제난 극복의 첫 시험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당선자는 고통분담요구를 통해 재계에 대한 주문을 한 뒤 곧바로 노동계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당선자측으로선 노동계내부의 반발기류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1월 임시국회를 통해 정리해고제를 강행할 경우 초래될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 정리해고제의 「연착륙」을 예단키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주변의 여러상황을 감안할 때 노사정협의체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작업을 거친 뒤 국회에서 관련 입법절차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당선자측이 새해들어 「공정한 고통분담」을 약속하는 노사정협약의 적극추진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정리해고제를 금융뿐 아니라 전산업에 확대하는 문제와 강성 노조세력이 반대입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을 경우 등에 대해선 여러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김당선자측은 노동계 설득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정리해고제를 강행하는 방안도 신중히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장현규 기자>

◎노동계 입장/“노동자만 희생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중인 정리해고제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은 IMF체제하에서도 단호하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달리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합법적인 해고가 이뤄질 경우 실직자의 생계가 막막하고, 일단 해고되면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곳은 정리해고의 최우선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는 금융산업노조. 금융노련(위원장 추원서)은 5일 성명을 내고 『현 위기의 원인은 관치금융 아래서 재벌기업들에 편중 여신을 해 준 정경유착에 있다』면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정리해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달 금융기관 노조들이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은행살리기 자구노력에 앞장설 것임을 천명했는데도 금융업 종사자들을 우선 정리해고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금융노련은 12일 단위노조 대표자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국노총(위원장 박인상) 역시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총의 한 관계자는 『정리해고 전에 노동시간 단축, 임금 억제, 직업훈련에 의한 직종전환 등 해고회피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면서 『정리해고제는 마지막 수단으로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총은 9일 고용안정대책위와 중앙위원회를 열어 정리해고제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안과 노·사·정 협의기구의 대응책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 배석범)도 정리해고제에 반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99년 3월까지 시행이 유보된 정리해고제의 조기 실시든, 금융개혁법상의 인수합병 정리해고든, 구조조정특별법에 의한 일부 분야의 정리해고든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민노총은 정리해고에 앞서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 재벌 해체, 고용안정 보장 등이 선행돼야 하며 이런 조치 없이 노동자만 희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민노총은 7일 중앙위에서 노·사·정 협의기구 대응방안과 정리해고제에 대한 대책을 정리한다.<남경욱 기자>

◎금융·재계 반응/환영속 금융권 첫실험대상엔 부담

금융권은 정리해고 조기시행 자체에는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도 금융부문이 첫 실험대상이 된다는 점에는 다소 껄끄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외국은행이 현지법인설립 및 국내은행인수를 통해 본격 영업을 시작할 경우 현재의 인력·조직구조로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며 『정리해고가 합법화해 인력수급의 탄력성이 생긴다면 영업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은 정리해고가 일반 법률로 명문화하기에 앞서 금융산업구조조정법으로 먼저 다뤄질 경우 예상되는 노조반발에 깊은 우려감을 표시하고 있다. 금융노련측은 이미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전산업 아닌 금융기관부터 시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분야가 금융산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은 경제주체 모두에 포괄적으로 다뤄야할 문제』라고 말해 금융기관이 총대를 매는 식의 정리해고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금융권은 지금까지 넉넉한 금전적 보상이 수반되는 명예·조기퇴직외에는 「일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조차 가져보지 못했던 탓에 정리해고의 충격이 더 큰 모습이다. 정리해고 1순위로 거명되고 있는 제일·서울은행에서는 고용불안의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다.

재계 역시 정리해고 도입에는 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다만 정리해고 도입과정에서 따라올 노동계의 반발이 생산위축으로 연결되지 않을지 역시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 각 재벌그룹 및 경제단체들이 내심 환영하면서도 논평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노동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편승」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재계는 입법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노사 모두를 달래기 위해 지나치게 엄격한 조건을 부과, 정리해고를 제도는 도입하되 실행될 수 없도록 선언적 규정으로 만들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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