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통 심할때 ‘찹쌀주욕’ 큰 효과노인병관리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공업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한(무한)에 도착한 것은 10월말이었다. 날씨는 쌀쌀하고, 공장에서 뿜어나오는 석탄가스로 대낮에도 햇빛을 볼 수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호텔도 낮에는 난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아 추웠다.
세미나가 끝나고 윈난(운남)성의 수도 쿤밍(곤명)행 비행기를 탔다. 쿤밍의 날씨는 늦여름 같이 청명하고 쾌적했다. 쿤밍은 중국말로 봄과 같이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해서 춘청(춘성)이라고 불린다.
바로 쿤밍시에 있는 윈난성중의학원과 종합중의원을 찾았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진 탓인지 개방의 흔적이 많았다.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서 건너와 기공술과 추나요법을 공부하는 사람도 눈에 많이 띄었다.
추나요법은 쉽게 말해 중국의 전통 물리요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에게 흔히 발생하는 목이나 척추 디스크를 치료하는 정형외과의 보조요법이 곧 추나요법이다.
◎윈난성의 풍물/10여개 소수민족 거주/타이족언어 태와 비슷
쿤밍 시내에는 종합중의원이 3∼4개 있고 입원환자는 1,000명이 넘는다. 종합중의원에는 소수민족의 전통의학과 관련된 진료실이 별도로 개설돼 있다.
다수민족인 티베트족을 위한 장의학 진료실과, 미얀마와 라오스 접경지대에 사는 타이족의 전통의학 진료실도 마련돼 있다.
장의학 진료실에는 티베트 전통의학의 시조인 쑹짠간부(송찬간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비품으로는 환약을 넣는 약장 두개가 전부여서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타이족 전통의학 진료실은 사람의 왕래가 잦고 약장도 많아 대조가 됐다.
윈난성 보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는 10여개 소수민족이 산다. 그중에서도 타이족, 장족, 묘족, 장족, 이족 등은 남쪽의 국경지대에 거주한다. 지방정부의 주선으로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소수민족 부락들을 이틀에 걸쳐 둘러보고 소문난 스린(석림)도 살펴보았다.
2주일에 걸친 쿤밍의 방문일정을 마치고 라오스, 캄보디아와 메콩강을 사이에 둔 시쑤앙반나(서쌍반납)로 향했다. 이곳 날씨는 여름같았다.
◎타이족의 전통의학/팔리어 의학원전 사용/인도 불교의학서 영향
시쑤앙반나는 메콩강만 건너면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갈 수 있는 중국 최남단의 내륙도시이다. 그래서 겨울이 없다. 여러 가지 열대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또 중국이 자랑하는 자연식물원에서는 망원경으로 야생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볼 수 있다.
시쑤앙반나 인근 지역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도시에는 내륙지방에서 이주해 온 한족이 많지만, 시골에 가면 소수민족이 많다. 묘족, 장족, 이족, 타이족이 각기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종교는 모두 불교이다. 이들 소수민족의 기원은 북쪽 지방이지만 언어는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어와 흡사하다. 타이족의 언어는 태국어와 문자만 다를 뿐 발음이 비슷해 서로 통용된다.
도심은 물론 시골에도 크고 작은 불교사원이 많다. 사람들은 거리에 나온 스님들에게 정성껏 공양했다. 이곳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한다. 타이족은 특히 찹쌀밥을 좋아한다. 소나 돼지고기를 먹지만 자주 섭취하지는 않는다. 대신 생선과 닭고기,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다.
특색있는 음식으로는 발효식품을 꼽을 수 있다. 생선은 물론 돼지고기, 쇠고기도 소금에 절여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육젓으로 만들어 먹는다. 채소는 김치처럼 발효시켜 먹는다. 고추도 태국이나 베트남 같이 매운 것을 먹었다. 날것으로 먹는 음식은 과일이 유일했다.
기름에 데치거나 발효시킨 음식이 많아 20∼30년전 우리나라의 시골 음식을 먹고 보는 느낌이었다. 된장은 삶은 콩을 발효시킨 뒤 절구에 찌어 만든다.
우리나라의 청국장 같았다. 술은 쌀을 발효시켜 증류주로 만드는 데 40∼50도 정도로 매우 독했다.
시쑤앙반나에 있는 타이족 전통의학병원에서는 타이족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의 방법으로 환자를 진료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의학원전은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로 돼 있어 중국의 전통의학보다는 인도의 불교의학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타이족의 전통의학/음식은 발효시켜 섭취/소화잘되는 찰밥 즐겨
윈난성의 소수민족들은 고유의 전통과 풍습을 지닌채 각기 다른 부락을 이루며 살아간다. 윈난성 보건국 통계에 따르면 소수민족의 어린이 사망률은 매우 높지만 장수하는 사람도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쑤앙반나에서는 전염병이 자주 창궐했다. 19세기말 중국대륙을 휩쓴 흑사병도 시쑤앙반나에 파견된 군인들에게 전염돼 전국으로 번졌다. 20세기초까지 중앙정부 관리들은 윈난성의 전염병이 무서워 시쑤앙반나에 부임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고장에는 100세 넘게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린시절 흑사병, 콜레라, 말라리아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놀라웠다. 타이족 전통의학병원 주임의사인 노의가 꼽는 장수비법 6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채소부터 고기까지 대부분의 음식을 발효시켜 먹는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발효식품은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고 젖산이 생성돼 소화가 잘된다. 또 구연산이 많아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치 된장과 함께 여러 가지 젓갈도 장수식품임에 틀림없다.
둘째, 찰밥을 먹는다. 멥쌀은 술 담그는 데 쓴다. 찹쌀밥은 보통 쌀밥에 비해 소화가 잘되고 영양도 뛰어나다. 우리가 소화기능이 약해졌을 때 찰밥을 먹으면 위장이 튼튼해진다고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모든 채소를 익혀 먹는다. 날 것으로 먹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채소는 꼭 데치거나 기름에 튀겨 먹는다.
넷째, 산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야생꿀을 1년 내내 먹는다. 시쑤앙반나에서 2∼3㎞만 가도 험준한 산이 나온다. 이런 산속에는 야생 벌이 많이 서식한다. 야생 벌집에서 꿀을 채취해 치료약으로도 사용한다. 소화불량에 효험이 있고 신경통에도 좋다고 한다.
다섯째, 매일 저녁 찹쌀로 빚은 술을 한두잔 마시고, 술찌꺼기로 목욕을 한다. 팔다리가 쑤시고 신경통이 심할 때 술찌꺼기를 아픈 곳에 바르거나 술을 탄 물로 목욕하는 주욕이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섯째로는 이 고장에 흔한 대나무 벌레를 먹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것이었다. 대나무에 기생하는 흰 벌레를 술안주로 먹는다. 전통음식점에서는 구더기 같이 생긴 흰 벌레를 사발에 담아 술안주로 내놓는다. 필자도 음식점에서 권해 먹어보았다. 외국인에게는 튀김으로 만들어 대접한다.
대나무 벌레는 체질이 허약한 노인들에게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업화한 도시에 살고있는 현대인이 흉내내기 어렵지만 전통음식을 먹고 열심히 사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라 여겨졌다.<허정 박사>허정>
□약력
▲57년 서울대의대졸업
▲60년 미미네소타주립대 보건학석사
▲63년 서울대보건학박사
▲78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79년 한국노년학회장
▲81년 대한예방의학회장
▲88년 한국보건행정학회장
▲현재 서울대보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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