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외국은행 합의불이행 “삐걱”/IMF 등 추가지원 함께 불투명국제금융계에서 「한국 상황」이 여전히 꼬이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의 민간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이견을 노출, 금융위기 조기 해소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들 은행은 한국을 금융위기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특히 이미 지난해 12월 29일 합의를 본 1백50억달러 단기차관에 대한 상환만기 연장도 이행하지 않았다. 일부은행들이 이중 10%인 15억달러를 연장해 주지 않고 회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지난달 31일 이를 외환보유고 달러로 메워야 했다.
한국 금융위기 해소의 최대관건인 만기연장 문제에는 중소규모의 은행들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 은행들은 장기전에도 버틸 여유가 있어 부실은행 인수 등 실속을 챙길 수 있지만, 중소 은행들은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차관을 제공한 1백여개의 중소 은행들중 대부분은 한국상황에 대해 여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이들 은행은 무작정 만기를 연장할 경우 1월말에는 단기차관이 3백억달러까지 불어난다며 한국이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원금에 이자까지 챙기려고 선뜻 만기연장에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많은 은행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국의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8일로 예정된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 금융개혁 평가에 앞서 좋은 평가를 유도하기 위해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매각을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IMF는 국제 민간은행들의 채무 만기연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추가 자금지원의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결국 8일로 예정된 IMF의 20억달러 추가지원 여부도 불확실한 실정이다. 13개국이 약속한 80억달러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단기부채의 만기연장이 이뤄져야만 추가지원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기차관중 1백50억∼2백억달러를 정부가 보증하는 만기 1년, 5년, 10년의 고금리(10∼11%) 장기채권으로 전환하는 문제도 논란거리다. 미국의 JP 모건은행이 주도한 이 방안은 2일 국제 채권은행단 회의에서도 본격 논의됐다. 칠레는 82년 정부가 수십억달러의 민간기업 채무를 떠맡아 일단 금융위기를 넘긴 경험이 있는데, 칠레 정부는 96년 말까지도 이 빚을 다 갚지 못했다.
한국에 대한 신규차관 제공문제도 미결인 채 남아 있다. 국제 채권은행단은 1백억달러 규모의 신규차관을 검토하고 있지만 서로간 이견이 조정되지 않고 있다. 신규차관에 적극적인 독일 은행들과 달리 대다수 은행들은 『IMF 추가지원 여부와 단기부채 해결과정을 지켜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단기부채와 금융기관의 주식을 교환하는 방안도 제시됐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어서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거대한 포커판과 다름없다. 한국을 상대로 도박을 하는 심정이다』고 토로했다.
한편 미 의회가 휴회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2월초가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의회가 한국 금융위기에 적극 개입할수록 미국 정부와 금융계의 운신의 폭은 좁아지기 때문이다.<이종수 기자>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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