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환자사후 부검통해 정체파악 노력폐렴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근대초 유럽에서 임상의학이 부활하고 해부학과 생리학이 발달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7세기에는 폐렴을 임상증상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18세기에 들어서는 환자 사후의 부검소견을 토대로 폐렴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이 이뤄졌다.
「영국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리는 시드넘은 17세기 후반 폐렴의 증상에 대해 상세히 기술을 했으나, 폐렴과 늑막염을 제대로 분간하지는 못했다. 18세기초 당시 유럽 최고의 의사로 추앙받던 네덜란드의 부어하브는 폐렴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의 대엽성 폐렴과 소엽성 폐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폐렴에 관해 더욱 중요한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한 것은 임상관찰보다는 부검을 통해서였다. 근대 해부병리학의 창시자인 이탈리아의 모르가니는 18세기 중엽 폐렴으로 죽은 환자들을 부검해 그들의 폐가 딱딱하게 변한 모습을 발견했다. 또 영국의 베일리는 역시 부검을 통해 폐렴 환자의 폐가 간처럼 변화하는 간변 현상을 정확히 기술했다.
폐렴을 진단하는 방법도 이 무렵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중엽 오스트리아의 아우엔부르거는 타진법을, 19세기초 프랑스의 라엔넥은 청진법을 개발했다. 이런 방법들은 폐렴을 초기에 발견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됐다.
폐렴은 대단히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것은 근대 이후로 생각된다. 폐렴에 관한 지식이 쌓이면서 오히려 병이 늘어난 것은 역설적이다. 근대에 들어 인구밀도가 높아진 것이 폐렴 만연의 중요 원인이 됐을 것이다. 또 폐렴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면서 의사들의 관심도 그만큼 늘어났다.<황상익 서울대의대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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