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당선 이수경씨 인터뷰/“사회의 삶까지 포괄하는 소설 쓸터”『너무 이르지 않은 나이에 등단하게 된 것이 오히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소설부문 당선자인 이수경(40·본명 이영숙)씨는 『그간 신춘문예에 줄곧 낙선하는 과정이 오히려 나를 가르친 것 같다』며 『이제 많이 감추고 조금씩 드러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부로 대학 강사로, 13년 동안 홀로 소설을 써 오며 11번이나 신춘문예에 낙선한 끝에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대학졸업 후 출판계에서 일하던 이씨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 각 대학에서 「여성문학론」 등을 강의한 이력을 갖고 있다.
막상 작가와 작품의 비판적 분석이 강의내용이었지만, 그 자신은 습작과정을 통해 「창작의 고통」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당선작 「가위 바위 보」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통찰, 견고한 소설적 구성은 창작을 향한 그의 이 긴 인고의 시간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씨는 지난해만 8편의 작품을 쓰는 등 앞으로 펼쳐보일 이야기의 보따리도 튼튼하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삶과 사회의 삶을 포괄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겠다』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믿음직한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소설 당선소감/“내게 소설쓰기는 외경스런 그무엇”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이 이른바 소설이 되는 건 지 의심하면서도 못된 습관처럼 일 년에 한두 편씩 신춘문예에 투고해왔고 번번이 쓴 잔을 마셨다.
그동안 내 안에서 여러 가지가 사라져갔다. 소설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 또는 진득거리는 짝사랑이 사라졌고, 알록달록 분칠한 내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어설픈 충동도 싹 사라져버렸다.
돌아보니 길고 씁쓰레했던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는 준엄한 교사였던 셈이다. 텅 비어 있는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 지는 앞으로 더 많이 읽고 더 열심히 써야 알아질 듯하다.
때로는 소설이, 아니 우리들 인간살이 자체가 누구의 시구대로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 내 모습에서 오기나 집념의 섬뜩한 그림자를 엿보기도 하지만, 내게 소설 쓰기는 단순한 집념과 오기 이상이며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외경스런 그 무엇을 가르쳐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태작에 다름없는 나의 글을 소설의 범주에 넣어주시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글 쓰는 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 세심하게 일깨워주셨던 유익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같은 길을 지향하는 여러 지인들, 좋은 친구들, 그리고 이제까지 내 글의 거의 유일한 독자였던 남편…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시부문 심사평/이 어려운 때 따뜻한 체온이 있는 시/“키치의 냄새를 상쇄할 시적 내공”
손택수씨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작으로 결정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정작 짜증나는 고역은 예심 없이 심사위원들에게 직접 맡겨진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최소한 이만 하면 「시」라 할만 하다는 명칭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골라내는 일에 있었다. 어떤 글이 시라고 불리어지기 위해서는 얼마간 산문적인 지상에서 스스로 떠 있어야 하는 데, 그러한 시적 부력을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
손씨의 작품 3편 외에, 정장훈씨의 「낚시터」외 2편, 이택광씨의 「녹」외 4편, 이호씨의 「사막 건너기8」외 2편이 본심에서 언급될만 하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시 스스로 시를 유지시키는 힘을 터득하고 있다 하겠다. 거미집은 공중에 떠 있는 가장 가냘픈 건축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에도 스스로를 유지시키는, 섬뜩한 집이다.
이호씨의 「사막 건너기8」은 『깨어 있는 사람들의 잠 사이로/ 유형의 길 하나 만들기』에 의해 어떤 고단한 구도적인 삶을 시적인 그림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이른바 「시적 형상성」이라는 점에선, 『모든 빛과 푸름을 증오하는』녹이 『붉게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노래한 이택광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 이씨 모두가 이런 시적 성취를 스스로 더 이상 유지시키지 못하게 하는, 닳아빠지고 무지막지한 관념 덩어리 밑에 짓눌려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정장훈씨의 「낚시터」와 손택수씨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은 어떤 관념이나 정서가 감각의 체로 잘 걸러진, 삶의 얼룩들로 어떤 의미심장한 무늬를 그려놓은 또다른 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씨의 「낚시터」는 그 무늬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흐르는 물 속에 플러그를 꽂고 있는 손이 강의 전부인 물결에 감전되어 놓지 못한다』고 쓰는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그 긴장감은,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선 시적 자아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미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감정을 너무 틀어막아 버린 통에 시의 내면이 약간 공허하거나 무미건조해진 느낌을 준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손씨의 작품은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과 관련된 어떤 추억을 모티프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데 그것이 추억이기 때문이겠지만 시 전체에 따뜻한 체온을 남겨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잔여에는 시의 도입부와 종결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는 것처럼 얕은 감상주의나 키치(저속취향)의 냄새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을 상쇄할 어떤 시적 내공이 이 작품의 핵에 도사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눈사람의 『만져도 녹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이미지의 모순어법을 중심으로 이 시를 읽어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 심사위원들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손택수씨를 당선작의 시인으로 선택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 따뜻한 영혼이 속삭여 주는 시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선자의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신경림(시인) 오세영(시인·서울대 국문과 교수) 황지우(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 당선 손택수씨 인터뷰/“개척되지 않은 부분을 탐색하고 싶다” 손택수(28·경남대 국문4)씨의 시는 따뜻하다. 자신의 당선작 시구처럼 그는 「벽돌 속에 꿈을 수혈」하듯 시를 쓴다. 요즘 여느 젊은 시인들의 경향과는 달리 그의 시는 우리의 서정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춘문예 두번째 도전에 그가 한국일보 시 부문과 함께 국제신문 동시 부문에 한꺼번에 당선한 것은 이 따뜻한 시정의 결과일 것이다.
손씨는 당선소식을 듣고 『의외였습니다. 제 시 같은 경향의 작품을 뽑아주시는 심사위원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시에 순발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보고 또 겪어온 「변두리 정서」를 그대로 읊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서야말로 손씨 시의 힘이자 밑천인듯하다. 군 복무 후 대학에 진학한 그는 자취생활을 하면서 학생회 사무보조, 학교 야간수위 일은 물론 안마시술소 구두닦이, 때밀이까지 하며 학비를 벌었다. 당초 소설공부를 하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시를 썼다.
『그 바닥체험이 사물에 대한 애정, 결코 녹녹찮은 삶을 쉽게 살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시를 쓰는 데 힘이 됐다』는 손씨는 『내가 경험했고 또 경험할 소외된 것들, 한국 시에서 개척되지 않은 부분들을 탐색하고 싶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시 당선소감/“부질없는 결기를 돋우면서, 막막해하면서…”
어깨 위의 지게 자욱, 깊게 패인 꿈 속에서도 한 짐 끄응 끙 힘에 부치신가. 아버지, 비탈비탈 비틀대는 벼랑길, 어디선가 사나운 모래바람이 인다. 갖은 속 말끔히 내어주고 마른 귤껍질처럼 형편없이 오그라든 어머니, 당신은 이 기나긴 겨울 또 누군가를 위해 알싸한 귤차를 끓이실 것이다. 그렇게 매운 고뿔 같은 세월을 온몸을 우려 다스리고 계실 것이다.
창밖에는 돌아온 탕아처럼 흐린 달이 선뜻 들어서질 못하고 오래 서성거리고 있다. 빨랫줄에 매달린 헐한 외투깃을 한껏 볼까지 곧추세운 채 안방에서 들려오는 잔기침 소리에 파르르 떨고만 있다.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온 것일까. 끝끝내 가 닿을 수 없는 쪽으로만 한사코 끝이 없이 걸어가던 나무들, 무엇을 외면하고 싶어 한 곳을 그리 뚫어져라 바라보았었던 것일까. 완행에 실려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던 숱한 밤들, 적막강산 제 슬픔에 취해 글썽이는 별들을 따라 허름한 여인숙 야윈 불빛 속으로 수줍게 뛰어들던 빗물, 내 살을 섞은 추억은 직행이 서지 않는 외진 곳에만 거했던 것일까.
잠시 숨을 축이고 나면 언제든 다시 떠나곤 하였던 것을. 덧나는 시간, 아물잖는 노을 속으로 뿌리는 빗발을 뜻없이 재촉하곤 하였던 것을. 내가 사랑하다 그만 둔 것들, 네가 그리워하다 영 잊어버린 것들, 그 끄트머리 쯤에서 가까스로 주저앉은 이정표 밑둥이라도 튼실하게 박아두고 싶었다.
내란이 외침을 부르고, 외침이 내란을 부르던 어수선한 안팎을 떠돌면서 우리들 끔찍한 청춘도 가만 놓아주고 싶었다. 떠돎만이 나를 완성하리라, 길 없는 길들만이 나를 간단 없이 고통받게 하리라, 부질없는 결기를 돋우면서, 막막해하면서… 언 하늘에 밑줄을 그으며 날아가는 새들을 전송한다. 눈이 내릴 듯 흐린 나날, 까무룩 별들도 다 잠이 들고 하염없이 멀어져 가는 새떼, 달을 떠매고 어딜 저렇게 줄지어 가고 있다는 것일까.
늘 함께 하다 신세 망친 벗 인호에게, 낮술에 취해서 월영동 벚꽃길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국문과 친구들에게, 장렬한 최후를 준비하고 있는 이장렬 형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하면 말문부터 막혀오는 박태일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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