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고물가에 ‘자칫하면 빚더미’/허리띠 죄고 ‘합리 소비’ 정착계기로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초등학교 2년생인 딸을 두고 있는 전업주부 이모(37)씨는 며칠전 『내년에는 월급이 10% 삭감된다』는 남편의 말을 듣곤 가슴이 내려앉았다.
생필품을 비롯한 각종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와중에 월급마저 깎일 경우 정상적인 소비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생존」을 위해 ▲남편의 승용차출퇴근은 평소의 절반이하로 ▲외식비는 한달 15만원에서 5만원으로 ▲식료품비도 10만원을 깎고 ▲저축도 5만원을 줄이기로 했다. 또 ▲경조사비는 1회 3만원에서 2만원으로, 부모님 용돈은 20만원에서 5만원을 줄여 지출을 최소화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올 한해동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씨가 겪기 시작한 느닷없는 「생활고」는 IMF관리체제하에서 대다수 서민들이 절감할 수 밖에 없는 평균적인 자화상이다.
IMF체제가 본격화하는 올 한해동안에는 내수침체, 긴축재정, 저성장, 고환율 등으로 소득은 줄어들고 물가와 세금은 폭등하는 시련의 한해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 부담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돼 1만달러 소득에 대한 기억은 잊고 5,000달러수준의 내핍생활을 각오해야 한다.
◆물가는 얼마나 오를까
소비자물가는 이미 남미의 몇몇 국가의 살인적인 물가고를 연상케할 만큼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휘발유가격은 ℓ당 1,200원을 넘어서 지난해초 보다 2배가량 폭등한 것을 비롯해 설탕 식용유 등의 생필품가격도 최고 40%이상 올라 서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당국과 관련연구기관들은 올해 소비자물가는 각종 물가상승억제책이 효과를 발휘할 경우 5∼6%에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희망적인 청사진이다. 지난해말부터 치솟기 시작한 교통, 식료품, 전기수도료 등의 기초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지난해초에 비해 평균 10%이상 폭등했고, 환율불안이 지속될 경우 추가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요불급한 사치성 소비재와 내구재 등은 수요위축으로 가격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내릴 가능성이 높아 평균적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정부의 예측범위내에서 움직일 수는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이 「저소득, 고물가」심리로 받아들이는 체감물가 상승률은 20%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종훈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그 대상을 생활기초품목으로 국한시켜야 국민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물가를 추산해낼 수 있다』면서 『환율, 국제원자재가격 변화등의 변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과거와 같은 소비가 불가능해진 데 따른 심리적인 허탈감까지 감안하면 체감물가는 정부의 예상치를 훨씬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씀씀이는 얼마나 줄여야 하나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최근 서울시내에 사는 주부 4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는 IMF시대의 소비생활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84.1%는 「소비생활이 변화하고 있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곤 대다수 가정이 「내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응답자의 19%는 「20∼30%」, 44.6%는 「10∼20%」나 소비를 긴축하겠다고 답해 60% 이상이 현재보다 10%이상의 내핍을 작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시대에 파산을 면하기 위한 당연한 자구노력이다. 올 한해동안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은 급여가 동결되거나 삭감될 수 밖에 없다. 대량실업이라는 극한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돈 값어치는 그만큼 폭락하게 돼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빚더미에 앉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IMF생활인」들은 소득과 지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최근 과도하게 비중이 커진 외식비와 레저, 의복비 등을 우선적으로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 품목은 당장 지출을 하지않아도 기초생활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사교육비, 교통통신비, 식료품비 등도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IMF관리체제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소비생활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구조조정하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외식비는 평균적으로 전체 가계지출의 10%에 육박하고 있고, 그 증가율은 최근 3∼4년간 일본 등 선진국의 두배수준에 이르고 있다. 의류, 내구재 등에도 거품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일부 부유층의 소비과시욕과 중산층의 「따라 사기」풍조가 외환위기에 일정부분 원인제공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 노윤주 조사연구부장은 『소비수준을 당장 낮추기는 매우 어렵지만 IMF시대에서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필요성이 낮은 부분부터 지출을 줄여야 한다』면서 『이번 기회를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동영 기자>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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