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위기에 몰려 지내다 보니 뉴욕이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귀가를 재촉하던 퇴근길에 마주친 긴 줄의 인파를 보고 이를 새삼 깨달았다. 현란한 조명에 휩싸인 라디오시티극장에서는 지금 「로킷걸」들의 송년 특집쇼가 한창이다.그 일대는 맨해튼중에서 아예 「극장구역」으로 불리는 명소이다. 브로드웨이 무대로 일컬어지는 30여개의 대극장이 밀집해 있고 좀 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올리는 「오프(off) 브로드웨이」극장 20여개가 주변에 산재해 있다. 또 우리의 소극장에 견줄만한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무대만도 30여개에 달한다. 카네기홀,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등지에도 세계 최정상급의 연주·공연이 연중 이어진다. 또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MOMA)를 비롯,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오브 아트, 구겐하임, 휘트니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술관과 박물관만도 60여개에 이른다.
궁금한 점은 이 곳들이 항상 인파로 붐빈다는 것이다. 뉴욕을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라고 지레 짐작했지만 세밀히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뉴요커」라는 말에는 좋은 직장뿐 아니라 예술, 문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뉴욕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의 일에 철저히 몰두한 뒤에는 과감히 일탈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뉴요커의 태도가 「자본주의의 수도」 뉴욕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해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느냐는 느낌이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위치와 분수를 돌아보았던들 오늘의 사태가 벌어졌을까하는 후회이다. 하지만 상심속에 주저 앉아 있기에는 다가올 신년이 너무 가혹해 보인다. 신정연휴 동안이라도 잠시 가족과 대학로를 찾아 한편의 연극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를 가지면 어떨까. 500원짜리 동전 한닢에 넉넉히 담겨나오는 따끈한 오뎅 국물이 있는한 그까짓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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