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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골라드세요?/이계성 주간한국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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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골라드세요?/이계성 주간한국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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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왈리드 타랄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쐐기모양의 아랍어로 자신의 명함에 가득차는 긴 이름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120억달러 재산에 당장 동원이 가능한 현금자산 30억달러. 「사막의 주식사냥꾼」 「베일속의 M&A귀재」 로 불리는 세계 금융시장의 「큰 손」인 그가 얼마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만나고 재계인사들과도 접촉을 가졌다. 바야흐로 세계의 기업사냥터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에 발빠른 사전답사 여행이었을 것이다.알왈리드 왕자 일행이 방한중 자기들끼리 농담삼아 나눴다는 대화 한토막. 『왕자님의 재산중 2∼3개월에 동원할 수있는 재산만으로 한국 주식의 70%를 사버릴 수 있다』

환율이 3,000원대로 치솟을 것을 전제로 한 농담이었다지만 무시무시한 얘기다. 거기다 한국기업에 큰 관심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또 한 사람의 큰손 조지 소로스가 가세한다면? 요즘처럼 환율이 두배로 오르고 주식값은 2분의1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그 두 사람의 재산만으로도 한국의 기업들을 다 인수합병해 버릴 수있다는 얘기가 된다.

알토란같은 우리의 기업들이 외국의 큰손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모든 빗장은 다 풀렸다. 초우량기업이라고 할 수있는 만도기계는 「단돈」 900만달러면 인수합병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1억달러정도면 지배주주가 가능하고 또 어떤 기업은 얼마니 하는 얘기들이 무성하다. 요즘 서울의 유명호텔은 「시즌」을 맞은 기업사냥꾼들로 붐빈다고하지 않는가.

우리 기업들은 가장 먹기좋은 상태로 요리돼 세계 시장의 식탁에 올려져있다. 세계화를 외쳤던 김영삼 대통령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철저하게 우리를 세계화시킨 셈이다.

앞으로 전개될 사태가 무섭다고 되물릴 수도 없게 됐다. 달러가 구한말 열강의 함포보다 훨씬 무서운 무기라는 것을 우리는 최근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다. 섣부른 국수주의는 IMF재협상론과 마찬가지로 IMF시대에는 「불온사상」일 뿐이다. 그러나 한마디만 하자. 외국 큰손들의 입김에 우리의 생명줄이 바람앞 호롱불처럼 가물거릴 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둘째치고 우리의 주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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