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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받은」 무죄(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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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받은」 무죄(사설)

입력
1997.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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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문정수 부산시장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을 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엊그제 같은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서 모든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한데 쓰인 것과는 다른 잣대로 보인다.궁금한 점은 간단하다. 문피고인이 지자체 단체장 선거운동 기간이었던 95년 6월 한보의 김종국재정본부장 등에게서 현금 2억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었는데 어떻게 무죄인가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무원이 될 사람이 그 직무와 관련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은 사전뇌물죄로 기소됐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무죄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비슷한 사건과의 형평성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같은 한보사건에서 정치자금조로 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4년의 유죄판결을 받은 하근수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들도 한보로부터 비슷한 성격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들은 돈을 받을 때 현역의원 신분이어서 일반 뇌물죄로 기소됐지만, 문피고인은 당시 의원직을 사퇴하고 부산시장에 입후보해 공직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지명도가 말해주듯 문피고인은 그 직전까지 「잘 나가는」 문민정부 실세국회의원이었다. 더구나 그가 부산시장에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한보가 그에게 2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줄 이유가 없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다. 평범한 국회의원에 불과했다면 돈을 받았어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네 사람처럼 일반뇌물죄로 기소됐을 것이 분명하다.

두번째는 한보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인정한 포괄적 뇌물죄와 문피고인의 경우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은 권노갑피고인이 한보로부터 특정한 청탁은 아니었어도 국정감사 질의 등을 통해 잘 봐달라는 막연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부산시장이 되면 한보철강 부산제강소의 노사분규 집단민원 등을 잘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준 돈을 받은 문피고인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구체적인 청탁이 명시되지 않은 돈은 받아도 처벌할 수 없다는 선례가 된다면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하는 판례가 될 것이다.

재판부는 『그 청탁이 반드시 명시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묵시적이어도 무방하지만 반드시 구체적이고 특정된 직무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무죄의 논리를 폈다. 사전뇌물죄는 처음 적용된 혐의여서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백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인권 제일주의 법정신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같은 사건의 재판에서 발생한 형평성의 문제와 관련한 의문에 관해서는 꼭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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