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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사당 경주시 상서장(차따라: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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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사당 경주시 상서장(차따라:34)

입력
1997.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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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약을 사 편지를 부칩니다”/당에서 벼슬을 하면서/석달치 월급으로 다를 사/부모님께 편지와 함께 보내는 등/그가 남긴글 곳곳에선/1,100년전의 다향이…신라에서 천재로 소문났던 고운은 열두살때 당나라로 건너가 열여덟살에 과거에 급제, 벼슬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떨친다.

지금 남아있는 고운의 흔적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보령 성주사 낭혜화상탑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등 금석문과 그의 문집 계원필경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것에나 차에 관한 언급이 있어 우리 차문화의 뿌리를 찾으려는 후세의 차인들에게 보탬이 되고 있다.

계원필경에 남아있는 고운의 편지와 글 편을 보면 그가 차를 얼마나 아끼고 이해하고 있는지가 선명하다.

「아뢰옵니다. 오늘 중군사 유공초가 차싹을 보내 왔습니다. 엎드려 생각컨대, 촉나라 몽정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수원에서 꽃다움을 드높이고 비로소 따서 만드는 공을 함께 하여 바야흐로 정화로운 맛을 갖추었사온즉, 녹빛 우유같은(녹유) 차를 쇠솥(금정)에 달이고 향긋한 진액(향고)을 옥사발(옥구와)에 띄워야 알맞을 것이오며, 만약 조용히 참선하는 어르신네(선옹)를 대하지 않는다면 바로 한가한 신선(우객)을 맞이해야 할 것이어늘, 뜻밖에 이런 훌륭한 선물이 외람되이 평범한 선비에게 미치오니 매림을 빌어오지 않사와도 절로 능히 갈증이 그치고, 훤초를 구하지 않사와도 비로소 근심을 잊게 되었나이다. 하정에 은혜를 느끼어 황공하고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햇차를 선물 받고서 감격한 마음으로 쓴 편지다. 금솥이나 옥사발같은 차그릇을 언급한 점이나, 몽정산 정기를 받고 싹이 터오른 명차는 높은 선사나 탈속한 신선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는 고백에서 차에 대한 그의 깊은 안목을 읽을 수 있다.

「…예부터 서천이 부강하다 이른 것은 다만 북로의 상인들로 인하여 차시의 이익을 얻어 군의 저축을 풍족하게 하기 때문이었사온데…」 당나라 황제에게 보낸 이 글에서는 고운이 산업으로서의 차농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음이 짐작된다.

「지금 본국의 사신을 태운 배가 바다를 지나가기에 저는 차와 약을 사고 집에 편지를 부치고자 하오이다. 말발굽 자국의 물은 마르기 쉽고,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는 채우기 어렵사와 엄하신 꾸지람을 피하지 않고…」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당나라에서 고국의 부모에게 보낸 것이다. 세달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던 귀한 차와 함께 효심도 담아보낸 것이다.

신라에 돌아온 고운이 왕으로부터 교지를 받아 지은 진감선사의 비석글(국보 47호)에는 그 당시 차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시금 중국차를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섶나무로 돌솥에 불때어 가루를 내지 않고 달여서 이르기를 “나는 이 맛이 어떠한 가를 가리지 않고 단지 배만 적실 뿐이다”고 하였다. 참된 것을 지키고 속된 것을 거스르기가 모두 이와 같았다」 진감국사의 차풍, 즉 선풍이 담겨있는 내용이다.

이밖에 고운은 차의 종류등에 대한 다보를 지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지금은 다만 「학사차(학사다)」라는 이름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다.

고운은 「난랑비 서」(란랑비 서)에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국유현묘지도왈풍류)」는 구절을 남겼다. 고운은 풍류에 대해 「곧 3교를 포함한 것으로서 모든 중생을 접촉하여 교화한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주지와 같고, 무위한 일에 처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장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가르침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세의 차인들은 풍류도로 일컬어 지는 고운의 이 사상을 차와는 불가분의 관계인 선도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고운이 도교적 전통과 불교, 유교 등 3교를 하나로 보았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스님아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말게/산이 좋으면 왜 다시 나오나/뒷날 내 자취를 두고 보게나/청산에 한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 (승호막도청산호 산호하사경출산 시간타일오종적 일입청산경불환)

신라말 기울고 있는 국운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고운은 세태에 밀려 세상을 뒤로한다. 경주 남산.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강주 빙산, 합포 별서, 부산 해운대 등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수행을 한다. 가야산은 최후에 처자를 거느리고 입산한 곳이다. 고운은 어느 날 갓과 신발만 남긴채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죽지않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경주시 인왕동 고운의 사당인 상서장 넓은 경내는 햇빛을 잘 받아 겨울속의 봄이었다. 영정각 앞 축담위에 울산다도교육원 장영동씨가 차 한잔을 올렸다. 서악동 서악서원에서는 관리인 최재훈씨의 안내로 영당의 신위앞에 제대로 된 차한잔을 올릴 수 있었다.<김대성 편집위원>

◎알기쉬운 다입문/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싼값으로 몰려드는/중국 차·차도구/한국고유 멋과 맛으로/이겨낼 길 모색할때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이 가장 부드럽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옷이나 음식에는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넉넉하게 껴안는 멋이 있다. 그 넉넉하게 껴안는 멋을 제대로 살려내면 우리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우리 차를 마시면서 우리 옷을 입으면 어떨까. 우리 차를 마시면서 우리 다식을 먹으면 또 어떨까. 그리고 우리 소리를 곁들이면 어떨까. 우리 것은 우리 것과 어울려 있을 때 제멋이 난다.

경쟁력을 이야기 할 때 우리 차와 차도구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우리 차와 차도구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의 경우 인건비가 너무 높아 거의 대부분을 사람 손으로 만드는 차와 차도구가 비싸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시장 개방과 함께 밀어 닥칠 중국과 일본의 차와 차도구에 우리의 시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몇해 전 값싼 중국과 동남아의 차와 차도구가 일본 시장을 완전히 석권할 때 일본의 차문화계가 일구어 낸 경쟁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 차생산업자들은 차를 고급차로 전환한후 자신들의 다도를 앞세워 다시 세계 차시장을 공략했다. 또 자국 차의 성분과 효능을 연구하여 다양한 기능성 음료를 개발, 다양한 연령의 소비자 입맛에 맞추었다.

그때 위생및 보건안전 문제가 중국산 차 그릇들에서 발생하였다. 특히 중국의 차그릇들은 얼핏 보아 구별할 수 없지만 그 값은 작가에 따라 기천원에서 기백만원에 이르는데, 싼 찻그릇에서 납이 검출된 것이다. 생산가를 낮추기 위해 연료를 절약하는 과정에서 경질의 차그릇을 만드는 온도인 섭씨 1,200도 이상 올리지 않고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 구워냈기 때문이다. 무조건 값이 싸다고 좋은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자.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차 그릇의 경우 과연 건강한 그릇인지 아닌지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디서 그런 일을 할 것인가.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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