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연출세심한 절제 돋보여/적절치 못한 대사구사는 흠으로…추운 겨울 한 냉혈한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입센 작 김철리 역·김영환 연출 「잃어버린 시간 속의 연인들」(30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 보크만(오영수)은 출세를 위해 사랑하던 엘라(이현순)를 실력자인 친구에게 넘기고 엘라의 쌍둥이 언니 건힐드(한명희)와 결혼한다. 그러나 엘라의 거부로 결혼을 못한 친구의 폭로와 파산, 그리고 수감생활 8년과 석방 후 스스로를 유폐시킨 또다른 8년. 1, 2막을 통해 대화로 드러나는 보크만의 과거는 가히 냉혈한답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노승진)를 놓고 건힐드와 엘라가 다투고, 여기에 아들과 함께 재기하려는 보크만이 가세하여 3파전을 벌이는 3막의 열기는 자못 뜨겁다. 결국 에르하르트가 연상의 이혼녀 윌튼 부인(이선주)과 떠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급속히 냉각된다. 4막은 모든 것의 정리이다. 하얀 눈밭을 지나 산에 오른 보크만은 야망을 불태웠던 세상을 내려다보며 숨을 거두고 그것을 지켜본 엘라와 뒤늦게 찾아온 건힐드는 화해의 손을 잡는다.
김영환의 연출은 역시 차분했다. 물론 원작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소리와 동작은 세심한 절제가 엿보였고 장치도 몇장의 천과 앙상한 나무 등 최소한에 머물렀다. 그래서 3막까지는 공간 사용이 다소 궁색해 보였으나 푸른 빛 조명에 설경을 펼쳐 놓은 4막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김철리는 번역에 일가견이 있다. 그는 우리 연극의 문제점을 기초 부족으로 진단한다. 그가 생각하는 기초란 올바른 대사구사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런 우리말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번 번역은 전체적으로 문장이 길어서 특히 2막까지는 관객의 몰입이 어려웠다. 또 인물의 이름을 빈번히 불러서 객석과 무대간에 원작 의도에 없는 불필요한 거리를 형성한다.
오영수와 한명희의 대사는 분위기 형성을 위해 너무 과한 힘을 쏟아 부었고 반면에 노승진과 이선주의 대사는 너무 쉽게만 처리되어 향기가 부족했다. 둘다 철저한 분석을 습관화하지 못한 결과이리라. 우리 연극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부분일 것이다.<오세곤 연극평론가·가야대 교수>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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