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사람들 행태 너무해요”『힘내세요. 힘들 때가 있으면 웃을 때도 온다고 하잖아요』
27일 상오10시. 서울은행 본점 영업부의 환전창구에서 오은선(21·여)씨가 무거운 표정으로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연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요즘 은행에 오시는 분을 보면 웃는 얼굴이 하나도 없어요. 고객들에게 힘내라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마지못해 쓴웃음만 지을 뿐입니다. 하루빨리 경제가 수습됐으면 좋겠는데 너무 답답해요』
오씨는 이제 입사한지 5개월 남짓된 새내기 행원. 은행일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터진 금융위기에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있다. 환전창구에 같이 일하는 선배언니 둘은 이미 파김치가 돼 몸살이 났다.
『직원들 월급줄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는 분이나 수출신용장을 갖고도 돈을 대출받지못하는 분들에 비하면 유학간 아들의 학비걱정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은 나은 편이죠.』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혹독하게 경제·사회공부를 하고 있는 오씨의 앳된 얼굴에도 언뜻언뜻 피로의 기색이 엿보인다. 요즘 무엇보다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소위 「가진 사람」들의 행태이다.
『「장롱속의 1달러라도 모으자」고 호소할때는 꿈쩍도 하지않다가 지난 19일께 환율이 잠깐 안정되자 은행문을 열기가 무섭게 수천달러씩 들고온 사람들이 환전하려고 법석을 피웠어요. 그런데 다음날부터 환율이 다시 치솟은 뒤로는 달러를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오씨는 『한쪽에서는 1달러라도 모으기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어떤 분들은 전화를 걸어 「언제 달러를 파는게 제일 유리하냐」「1만달러가 있는데 제일 비쌀때 팔아줄 수 있느냐」며 제 잇속을 차리기에 분주하다』며 『이런 분들에게 「달러예금을 하면 안전하다」라고 권하면 대부분 못들은체 한다』라고 허탈해했다.
온나라가 겪고있는 어려움을 그야말로 「최일선」에서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오씨는 불과 한두달 사이에 부쩍 성숙해졌다.
『이럴때일수록 「나하나 쯤이야」할 게 아니라 「나부터」라는 마음다짐이 필요한 때입니다.
경제가 불안하다고 우격다짐으로 은행돈을 빼내고 편법을 동원해 달러사재기를 한다면 나라살림이 더욱 어려워질 것은 뻔한 것 아니겠어요』<이동국 기자>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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