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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널려있는데…”/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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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널려있는데…”/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7.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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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선 요즈음 「달러가 널려 있는데」「그냥 줍기만 하면 되는데」라며 답답해하는 교민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달러의 품귀로 달러당 2,000원벽이 허무하게 무너진 23일 한 한국식당에서 만난 몇몇 주재원들은 「달러가 발에 차이는 곳에는 눈도 안돌리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서울을 성토했다.이유는 간단하다. 원화가치 하락을 반영, 대러시아 수출상품 단가를 10∼30% 낮출경우, 수출물량을 크게 늘려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D상사 주재원은 『러시아는 신용장(L/C)보다 현금거래가 많은 곳이다. 단가를 내리면 딜러들에게 선수금 비율을 대폭 높이거나 물건값을 곧바로 달러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재원은 『국내은행이 L/C를 열어주지 않아 수출을 못한다는 불평도 남의 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상품은 TV등 가전제품. 가전제품은 19억6,000여만달러(96년)에 이르는 수출 총액의 52%에 달한다. 10억1,000여만달러 수출에 시장 점유율은 39.3%로 1위다. 단가를 내리면 시장점유율을 50%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발로 뛰는 주재원들의 이야기다.

달러를 주울 수 있는 분야는 또 있다. 러시아의 보따리 장사꾼들을 대거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보따리 장사꾼이라지만 이들이 연간 들여오는 생필품 규모는 어림잡아 120억달러에 이른다. 대러시아 수출규모의 무려 6배다. 아직까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터키가 가장 큰 수혜국이다.

그러나 현 환율을 감안하면 터키로 떠나던 「숍 투어(쇼핑관광)」꾼들의 발길을 한국으로 돌릴 수 있다. 모스크바의 한국여행사들은 이미 한국행 「숍 투어」상품을 개발해 러시아 언론을 통해 홍보활동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입출국을 비롯, 교통및 숙박편의 등 서울측의 협조가 긴요하다.

물론 가전제품의 저가 공세나 보따리 장사꾼의 증가에 따르는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굽신거리며 달러를 꿔오기보다는 어떻게든 수출을 늘리는 게 더 당당하지 않을까. 정부나 기업 따질 것 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이 처절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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