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변덕과 순발력/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변덕과 순발력/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12.29 00:00
0 0

한국에 살면서 요즘처럼 많은 변화를 겪은 적은 없다. 덕분에 신문과 TV 뉴스를 빼놓지 않고 보고 있는데, 문제는 그래도 모든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로 월급은 앉은 자리에서 파도타기를 하고 물가인상은 놀라운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어디 경제만 그런가. 처음으로 야당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자 그동안 정부정책에 비판만하면 소임을 다했던 야당은, 여당이 주장해오던 「국민 모두의 일치 단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TV 뉴스에서는 대통령 당선자가 외국인들을 만나는 모습이 현 대통령의 소식보다 앞서서 소개된다. 그 뿐인가.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감옥에 갔던 전직대통령이 사면되자 대다수 국민이 환영하는 것이 요즘의 한국이다. 한국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도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놀라는데, 외국에 있는 외국인들이야 오죽할까. 그저 어안이 벙벙해서 『한국인들은 예측을 못하겠다』고 말할 수 밖에. 그러나 이런 점잖은 표현 뒤에 숨은 이들의 속마음은 「변덕이 심하고 믿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특히 요즘 한국의 날씨는 변덕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겨울은 겨울인데 봄날 같이 따스해서 베란다에서는 때아닌 봄꽃이 피어나는가 하면, 갑자기 영하의 날씨가 되고마니 변덕스럽다고 할 수 밖에.

사실 변덕에 관한한 아무도 못따를 변덕은 합리적 사고의 전형인 서구문화의 「조상」 그리스 문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변덕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인 위대한 영웅들은 이랬다 저랬다하는 신들의 변덕 때문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인물들이다. 오이디푸스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운명을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지니고 태어났으며 신들이 제멋대로 정해버린 운명은 인간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서구의 변덕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에서는 다르지만, 그들 국가의 외교정책은 자신들의 이익이 보장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변덕을 긍정적으로 보면, 순발력 혹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된다. 변덕스러운 것은 순발력이 강하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는 것이니 크나 큰 장점일 수도 있다. 외환위기를 맞아 외화예금이 늘고 해외연수가 거의 없어지는 등 모든 변화는 한국인이 순발력 혹은 변화에 강한 적응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닥칠 더 힘든 일들도 재빠르게 대응해서 이겨내기만 하면 서구 언론의 「한국인은 변덕스럽다」는 유쾌하지 못한 평가는 「순발력이 강하다」로 대치될 것이 틀림없다.<한국외대 교수·페루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