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아껴라 아껴라 잔소리 하기 힘들더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시대가 되면서 말하기 참 쉬워졌다는 주부들이 많다. 심지어 어떤 정신과 여의사는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어머니, 외제 화장품 쓰시는 것 있어요? 절대 쓰지 마세요』라고 하더라며 『물건 아까운 줄 모르던 어린세대 교육에는 이쯤해서 터진 것이 참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환경운동에 열심이던 주부들은 아예 쌍수를 들어 IMF를 반긴다고 할 정도였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수도꼭지를 노상 틀어놓고 목욕을 하는 사람이 한두명은 꼭 있다. 수돗물 좀 아끼라고 하면 「네물도 아닌데 웬 간섭이냐」고 나서 싸움이 날 정도였는데 IMF시대가 되면서 군말없이 수도꼭지를 잠그더라』고 들려주는 주부도 만났다. 식당에 갔더니 서비스가 무척 좋아졌다, 사람들이 돈 무서운 줄 알게되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니 좋다, 차 끌고 나오는 사람 적어서 길이 뻥 뚫리니 좋다, 능력도 없이 친한 (정부) 고위층만 믿고 방만하게 경영하던 재벌들 정리된다니 좋다 등등 사람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해고와 물가불안, 임금동결의 불안과 함께 IMF긍정론이 어김없이 화제에 오른다. 그러면서 선진국 사람들이 왜 현금 한푼에 벌벌 떠는지, 밤이면 모두들 가정으로 돌아가 거리가 한산한지 그이유를 체득하고 있다. 경영자들은 이래 저래 불만 많던 종업원들이 서로 일만 시켜달라고 하는 상황을 IMF덕분이라며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틈엔가 사람들이 『여기에도 IMF가 들어와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요즘 달라진 풍속도이다. 여성 생활면의 주 취재원인 주부들한테 가장 많이 「여기」로 지목받는 것은 교육현장과 세무당국이다. 「교육현장은 IMF체제 이후 촌지 밝히는 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기대를 하는 주부들이 많았고 세무행정에 대해서는 『금융실명제도 흐지부지 된 판에 세무행정이라도 바로 잡혀야 눈먼 돈이 잡혀서 경제가 바로 설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기자 역시 영수증을 꼭 받는 일로 세무행정의 투명화에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점심에 간 찻집에서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문방구 영수증을 맘대로 쓰라고 내민다. 참 멀었다,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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