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6일 한보사건 상고심에서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함으로써 항소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로써 97년 벽두부터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은 듯 시끄럽던 문민정부 최대사건에 대한 사법처리가 모두 끝났다.재판결과 사건의 중심인물 정태수 피고인은 징역 15년, 홍인길 권노갑 피고인은 징역 5∼6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상고를 포기한 전 제일은행장 신광식 피고인 등 은행장 3명도 징역 3∼5년의 원심이 확정됐다. 이와 함께 황병태 정재철 김우석 정보근 피고인 등도 2심의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돼 현역 국회의원 신분을 가졌던 4명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번 판결을 대하는 우리는 허탈감을 숨기기 어렵다. 상고심은 법률적용의 적부를 가리는 것이므로 이번 재판 자체를 논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건처리 마무리 시점에서 전체를 조망해 보면 무언가 미흡하고 불만스러운 감이 있다.
우선 정경유착의 전형과도 같은 이번 사건 수사를 팀을 바꿔가며 2개월 여를 끌고도 정작 온 국민의 관심의 초점이었던 이른바 「몸통」의 실체를 밝혀내는데는 끝내 실패했다는 점이다. 국가경제를 망친 정경유착 비리에 대한 단죄로서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 한보사건과 관련해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은 정태수 회장과 관련 은행장 3명 뿐이다. 고위관료와 정치인 등 이 사건이 있게 한 사람들은 모두 집행유예 또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별도의 혐의로 구속됐던 김현철 피고인도 급작스런 보석결정으로 풀려난지 한달이 넘었으니 사건은 그 때 모두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1년도 채 못되어 판을 모두 덮어버린 사정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한 정권과 관련된 사건은 그 시대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도 있는가.
이번 사건에서 사법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은 기소단계에서 권노갑 피고인에게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됐고 재판부가 이를 인정했다는 점일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국회의원이 동료의원을 설득·권유하는 행위와 관련해 돈을 받는 행위도 뇌물죄가 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 혐의는 여러 피고인중 야당의원인 권피고인에게만 적용돼 형평성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검은 돈을 받는 관행을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한 것은 모든 정치인들에게 분명한 경종이 되었다는데 판결의 의미가 있다.
피고인들이 잃은 국회의원직 네 자리는 전국구 승계나 보선같은 절차를 통해 메워지게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판결이 있기전부터 이번에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못한 일부 피고인들도 풀어주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점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한 사람은 현 정권의 실세, 또 한 사람은 새 정권의 실세라는 이유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내리자는 의논이 있고 심지어는 새 정권 출범을 기한 사면논의까지 일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논리를 내세운 그런 논의는 이번 재판결과로 상처받은 국민의 법감정을 또 한번 자극하는 일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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