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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조직 뜯어고쳐야 국난 이긴다/이장춘(긴급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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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조직 뜯어고쳐야 국난 이긴다/이장춘(긴급제언)

입력
1997.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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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응급지원을 받은 한국경제가 순조롭게 회생하여 정상 가동되고 한국이 큰 무리없이 선진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궤도를 탈 수 있을 것인가는, 왜 우리가 바나나 공화국의 지위로 떨어졌는가에 관한 원인과 이유를 냉철하게 살핀 후, 과연 근본적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우리가 국가부도 위기로 몰리게 된 원인과 이유로는 정부조직을 포함한 정치권력, 경제활동, 사회생활의 제반 국가조직이 총체적으로 부실한데다 드라마 같이 국사를 다룬 김영삼 정부가 실정한 것을 으뜸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물론 직접적 책임은 재벌과 종금사들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보였던 한국경제의 간판을 빌려 무모하게 엄청난 규모의 외화 빚을 진데 있지만, 네 마리의 동아시아 호랑이 가운데 다른 호랑이들은 거의 멀쩡한데 우리만이 이렇게 참담해진 것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정부에 비할 때 우리 정부의 관리능력이 불량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의 국가조직에 담겨있는 독특한 의식과 행태가 이 황당한 국난을 초래하는데 기여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우리속에서 원인찾아야

미국이 이긴 전쟁의 결과로 해방이 되어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한국이 안보면에서는 이날까지 한번도 홀로 서 본 일이 없다가, 박정희 장군의 영도하에 개도권의 우등국가가 되어 경제면에서는 겨우 독자적인 힘을 좀 가지던 차에 봉착한 그지없는 낭패의 진원은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업이 망해도 정부가 그 뒤를 챙겨준다는 관행을 믿고 남의 빚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돈을 함부로 쓰면서 허풍과 과장을 즐겨온 사람들이 아닌가. 이성과 냉정을 싫어하는 우리는 무속과 풍수지리를 믿고 국민정서를 중시하면서 신토불이의 정신아래 우리의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차리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는가.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우리는 격식을 잘 차려 회의를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기념식, 임명장 수여식, 종무식, 시무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가 하면 무난을 미덕으로 설파하면서 꼼꼼히 정확하게 따지는 것을 잘다고 매도하는 적당주의자들이 아닌가.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낯뜨겁게 훈장을 나누어 갖고, 철도와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며 나라가 이 정도로 나락의 위기에 처해도 자진해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판에, 천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는 속담에 따라 사과하면 그만으로 끝내주거나 자의적으로 법을 심판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갑자기 수출로 신흥부자가 된 것 이외에는 선진세계와 겨룰 만한 것이 거의 없으면서, 무턱대고 선진국 클럽에 가입해 놓고 세계화의 경쟁무대에서 겁없이 활개를 치다가 국가적 파산의 벼랑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총리 각료겸임 바람직

이런 우리의 의식과 행태가 투영되어 있는 국가조직은 당장 바꾸거나 고치기가 대단히 힘들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않고서는 이 어처구니 없는 곤경에서 살아남아 이미 높아진 욕구수준을 기본적으로나마 유지하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의 정부조직과 정치권력조직 속에는 고려, 조선, 일제시대를 통해 물려받은 농경시대적 관료주의의 잔재와 냉전시대, 개발독재시대, 허풍시대에 도입한 시대착오적 유산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 잔재는 경제국가로서 우리의 경쟁력을 기르는데 짐이 되고 있으며, 그 유산은 민주국가로서 우리의 성장을 도모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새 정부가 그 출범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응급조치를 우선 내려야 할 것이다.

조선의 영의정을 닮은 국무총리는 절차기관으로서의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경일 하나 바로 없는 나라의 각종 행사에서 대독이나 하며, 사고의 책임에 대한 제물이 아니면 액땜을 위한 무당의 굿을 방불케 하는 연말 개각용에 급급했던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이름 뒤에 꼭 직함을 붙여 불러야 하는 나라에서 여태까지 우리의 총리는, 재임중 무엇을 했느냐에는 관계없이, 출마와 입신을 위한 경력관리용이나 죽은 후의 묘비용으로서는 그 값이 높이 평가되곤 했다. 사실 대통령제 하의 임명된 총리는 청와대, 내각, 국회, 당, 초법적기관 구성되는 우리의 권력구조에서 역할을 찾기가 어렵다. 앞으로 내각제가 채택되어 수상으로서의 실권적 자리가 되거나 아니면 장차 개헌을 통해 부통령제가 채택될 때까지의 과도기간 동안이라도, 총리에게 실질적 일을 주기 위해 새 정부는 그 자리에 각료직 겸임을 부여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모든 것을 줄이고 아껴야 할 IMF 시대에 그리고 어지러운 정부조직을 바로 잡을 때까지, 인사의 겸임은 각료급의 다른 자리들을 포함한 여러 부서간에 활용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부총리제도 사라져야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인 우리의 부총리는 분명히 사라져야 한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도 있고 부총리도 있는 나라는 없다. 북한을 포함한 전체주의 국가에는 그 체제의 열등적 특성 때문에 부총리를 두며, 내각제 국가에서는 한 명의 부수상을 지정하기는 하나, 그 부수상은 법적으로 고정된 자리가 아니고 수상부재시의 경우에 의례적으로 수상을 대리할 뿐이다. 상부기관으로 행세하면서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부총리나, 지원기관에 불과하거나 제2차적 정부기능의 성격을 띤 부총리급들은 미련없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차관이 부처주인 되도록

구시대적 전통과 유산이 여러군데 반영되어 있는 우리의 각 부처에는, 우리의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없다. 빈번한 장관의 경질을 따라 거의 자동으로 바뀌는 각 부처의 차관은 대개 공무원으로 있다가 그 자리에 임명되면 정무직이 되어 버린다. 차관이 장관으로 올라가는 것이 모든 의미에서 과연 승진인지를 우리도 이제 물어볼 때가 되었다. 각 부처가 수행하는 정책문제에 대한 책임자는 장관이나, 정책을 집행하고 법을 지켜야 할 책임을 맡은 각 부처 자체의 주인은 관료출신 차관이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차관은 차관으로 은퇴한다. 교사와 경관과 집배원이 존경을 받아야 할 다원주의 사회의 가치체계상, 직업관료의 마지막 자리인 차관이 장관보다 반드시 못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군의 참모총장이나 경찰, 검찰등 전문직업의 총수를 지내고도 초선 국회의원이 되려하거나 전문직업의 가치와 권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연명을 위해 납득하기 어려운 자리로 옮기는 풍조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민주정치의 성공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으로서의 중립적 직업공무원제도 확립을 위해, 차관을 신분상 직업공무원의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훈련된 인재 우선발탁

주인이 없는 정부의 각 부처에 모인 공무원들은 과외와 입시지옥을 거쳐 대부분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의 가도에서 발탁된 인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개방적 국제화 시대에 국가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여러 면에서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게 되었다. IMF의 전문관료들은 물론 선진국의 직업관료들을 상대로 하는 어떠한 게임에서도 우리가 지지 않도록, 우선은 긴급수혈 방식으로 훈련된 인재를 발탁하는 한편 잘 사는 나라가 되는데 필요한 인재를 중점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정부가 프로페셔날리즘으로 무장하기 위한 조직개편이 시급하다

○기능주의 정부 만들때

우리의 획일적인 정부조직법에는 어느 부처가 무엇을 하게 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대강의 적당주의를 택하고 있다. 우리는 업무량과 책임의 정도와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부처를 편성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부처에 따라 차관의 수가 다르며, 부처에 따라 아예 차관을 두지 않는 나라도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재판을 잘 하여 잘 먹고 잘 살게 된 나라는 없고 물리 화학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배출한 나라치고 못사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유념하여,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정부의 조직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진국에 없는 우리의 공무원 계급제도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품계제도로 사실상 되돌아가고 있는 느낌을 준다. 보직과 반드시 관계없는 현행 승진제도는 우리끼리만 병정놀이 하듯이, 허망한 경쟁을 하도록 하고 해괴한 별도정원을 양산하여 자리를 자주 갈라먹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이리하여 잦은 자리 변경으로 빚어지는 폐단은 일의 전문성과 계속성을 망치고 있다. 불필요한 일을 하게 되면 필요한 일을 하는데 지장을 주고 불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진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위인설관의 유구한 전통과 습관에서 벗어나, 철저히 능률과 경제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해야 할 일을 먼저 규정하고 그 일을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에 관한 과학적 경영진단을 통해 기능주의 정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

건국후 근 50년만에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그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가시밭길에 못지 않게, 백척간두에 선 국운을 바로 잡기 위해 다시 구국의 험난한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다시 여소야대로 돌아간 어려운 국내정치 판도를 딛고 우선은 외환위기를 해소하면서, 동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파장을 따라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외교안보상의 도전에 대처하기도 해야 한다. 새 대통령의 지혜와 용기를 믿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가 수행할 국가재건의 막중한 과업이 성공하도록 거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일본 게이오대학 방문교수>

□약력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청와대 정무비서관

▲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

▲주 싱가포르·오스트리아·필리핀대사

▲현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겸 게이오(경응)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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