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로 인한 권부내 명암의 교차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의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안기부의 관계이다. 김당선자는 「피해자」, 안기부는 「가해자」였음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안기부가 김당선자의 법적인 직속관할기관이 됐다. 김당선자의 손에 안기부의 「명운」이 달려 있다.양측이 맺은 대표적인 악연중 첫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의 전신 중앙정보부(부장 이후락)가 저지른 「김대중 도쿄(동경)납치사건」이다.
김당선자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한 80년대 중반이후 안기부는 중요한 정치고비때마다 그를 괴롭힌 「북풍」의 진원지로 지목됐다. 89년 서경원 전 의원의 방북사건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됐을 때 안기부는 제1야당(평민당)총재로 여소야대 정국을 주도했던 김총재를 불고지혐의로 중부경찰서에 소환, 철야조사를 벌임으로써 씻을 수 없는 정치적 상처를 주었다.
92년 대선에서 안기부가 들이댄 칼은 「남파간첩 이선실 사건」이었다. 김당선자는 낙선하고 나서도 분을 풀지 못하고 당시 김종필 민자당대표가 국회에서 「용공음해」를 사과토록 만들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오익제 서신사건으로 한때 위기상황이 조성됐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의 기민한 대처, 색깔론에 대한 국민의 염증으로 김당선자의 피해는 작았다.
이같은 과정에서 김당선자는 「화전」양면 전략으로 안기부에 접근했다. 국회 정보위 신설을 주도, 안기부에 대한 정치적·법적 견제장치를 마련하고 안기부의 수사권을 축소시킨게 대표적인 강경 대응이었다. 반면 지난해 8월 내곡동 안기부청사를 직접 방문, 청사신축을 축하해주는 등 김당선자가 안기부를 위무하기 위해 들인 공도 만만치 않다.
이제 칼자루는 김당선자에게 넘어 왔다. 안기부의 앞날이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다시는 나같은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김당선자의 강한 의지가 변화의 대전제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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