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타룩의 화려함에서 슬릿스커트류의 노출 그리고 젠더리스·빈티지룩/옷입기의 테마는 ‘즐거움’올해 거리패션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옷입기를 할 수 있을까」였다. 옷이 몸을 보호하고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기성세대와 달리 신세대들에게 옷입기는 「놀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옷입기의 첫 신호탄은 새해 벽두부터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영화 「에비타」에서 비롯됐다. 복고풍과 함께 90년대 세계패션흐름의 양대산맥으로꼽히던 미니멀리즘의 단순함에 식상한 사람들은 「에비타룩」이 보여주는 화려한 레이스와 주름장식, 스팽글과 자수에서 옷입는 재미를 새로 발견했다. 미니멀리즘에서 낭만주의로 변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봄 여름 내내 거리를 휩쓸던 슬립원피스나 어깨를 다 드러낸 홀터넥 원피스나 상의류, 주름장식이나 레이스소재의 블라우스 등은 낭만적이고 여성스러운 멋을 내주는 의류로 여성들의 필수아이템이 됐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올해 문화가의 핫 이슈였던 「몸 다시보기」바람을 타고 대담한 노출패션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가슴이 깊숙히 파인 클리비지룩이나 허벅지를 드러내는 슬릿스커트, 맨어깨를 드러내는 홀터넥 원피스 등이 대표적인 아이템들. LG패션 패션정보실 전영미실장은 『정신에 종속된 개채로서가 아니라 육체 본연의 느낌과 욕망을 인정해야한다는 인식이 패션에도 반영돼 보다 섹시하고 대담한 옷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말한다.
남녀복의 구분이 모호한 탈성화, 이른바 젠더리스(Genderless)룩은 패션계에 「고감도 베터라인(Better lin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올해 등장, 도시캐주얼의 대명사가 된 젠더리스룩은 기존의 캐주얼의류에 비해 정장의 냄새가 진하고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모호하면서 트렌드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 남성복에서의 모즈룩 대두와 맞물린 이 트렌드는 남성복에서도 몸매를 강조하는 실루엣을 유행시켰다. 「96뉴욕」과 「보브」「모리스 커밍 홈」등이 젠더리스로 선풍을 일으킨 브랜드들.
5부와 7부 등 다양한 길이의 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빈티지룩의 강세가 두드러진 것도 올해 거리패션의 새 경향이다. 60∼70년대 복고풍 패션의 유행으로 새롭게 떠오른 기장의 변화는 전반적으로 롱&슬림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일탈한 듯한 멋으로 신선하게 어필했다. 무릎까지 오는 버뮤다팬츠가 여름내내 정장과 캐주얼에서 모두 인기를 얻었다.
옛옷을 꺼내입은 듯 약간 촌스러운게 멋인 빈티지룩은 10대와 20대 초반의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옷입기를 재미로 인식하는 세대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 이들 새로운 세대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도 등에는 배낭을 멘다거나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웨스턴부츠를 신는 등 언밸런스패션을 요령있게 입어내는 것으로도 거리패션을 풍성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어느해보다 다양한 소재를 쓰게 된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스판덱스류의 압도적인 인기와 더불어 은은히 비치는 시스루소재, 동양풍의 화려한 멋을 살린 벨벳 번아웃소재, 기모가공을 한 울, 표면에 요철느낌이 나는 트위드, 광택가공을 한 가죽 등이 다채롭게 등장해 어느해보다 풍성한 소재의 향연을 보여줬다.<이성희 기자>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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