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한국근대소설사’ 김영민/조선후기 문학과 근대소설 사이 연결고리 찾아 근대문학 독자성 입증『조선후기 문학과 근대소설 사이의 연결고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별로 연구가 안 된 분야입니다. 이런 잘 안보이는 부분에 주목해 상을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들여 썼습니다』
「한국근대소설사」(솔 발행)로 인문과학 부문 저작상을 받게 된 김영민(42)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 근대소설은 서양소설을 일본이 중개해준 데서 시작됐다는 통설을 심정적으로는 부인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전통과 근대를 잇는 자료가 없었던 점에 주목해 한말에서 1910년대말에 이르는 근대소설사를 실증적으로 연구·정리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후기 소설과 신소설을 이을 자료를 찾았습니다』
김 교수는 이 연결고리를 「서사적 논설」에서 찾는다. 서사적 논설이란 전통적인 이야기 문학인 야담이나 한문단편 등이 근대적 문화매체인 신문의 논설과 결합해 생긴 한말의 새로운 서사문학 양식. 이는 논설란에 실렸지만 당시 지식인들이 식민시대의 검열을 피하면서 자기 주장을 넣을 수 있도록 한 사실상의 소설이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사실 이런 성과는 결코 쉽지 않다. 19세기말 20세기초 신소설 관련 자료가 대부분 국한문혼용체여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신문 잡지 등 곳곳에 흩어져 있어 찾아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5일부터 일본 릿교(립교)대 국제학연구센터 교환연구원으로 도쿄에 머물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독자성은 「논설의 전통이 소설로 간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본에서도 여러 자료를 추적해 확인하고 나아가 국수주의를 배제하면서 우리 문학의 독자성을 밝혀보고 싶습니다』<이광일 기자>이광일>
◎사회과학/‘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도진순/“5년간의 해방공간은 통일 비추는 거울”/당시 한·미 남·북관계 냉정한 시각으로 분석
『이런 영광을 안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 책은 보잘 것 없지만, 나의 청춘과 열정, 번민과 고뇌로 탄생한, 또 하나의 아들인 셈입니다』
도진순(39) 창원대 사학과교수는 30대 초반에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 해방공간(45∼49년)을 집중조명한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서울대 출판부 발행)를 냈다.
도 교수는 『민족분단이 시작된 해방공간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민족통일)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단의 씨가 뿌려진 해방공간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저작은 미군정 G2(정보)자료 등 그동안 역사연구에 본격 활용되지 않은 많은 사료를 수집, 해방공간을 얼음처럼 「차가운 시각」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5∼49년 우리현대사의 기본축을 한·미라는 국제관계와 남·북이라는 민족관계 두 가지로 설정하고, 표면의 정치행위와 이면의 정치공작이 결합하는 역동적 과정 속에서 현실정치와 민족운동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승만 김구 김일성의 삼각관계, 곧 이승만과 김구는 같은 우익진영이었는데 왜 적대적으로, 김구와 김일성은 계급적으로 적대적인데 왜 합작으로 선회했는가』가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많은 새 사실을 밝혀냈다. 45년 10월 소위 동경회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46년(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가 아닌 45년 10월에 이미 분단의 싹이 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 교수는 『해방직후가 분단형성기라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는 분단해소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분단해소기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서사봉 기자>서사봉>
◎시사교양/‘법은 무죄인가’ 박홍규/법의 모순들과 검찰조직의 문제점을 법학자의 예리한 눈으로 파헤쳐
『책은 잘 안팔리지만 의미있는 분야의 연구에 대한 보상으로 알고 인권 노동 등 관심분야 집필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시사교양물 부문 저작상 수상자인 박홍규(45) 영남대 법대교수는 소감을 『기쁘고 고맙다』고 짧게 밝힌 뒤 우리 사회에 아직 제대로 보호·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인권이 하루빨리 정착, 확장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수상작 「법은 무죄인가」(개마고원 발행)에서도 구속수사의 남발, 유명무실한 국선변호인 제도, 노동자를 오히려 억압하는 노동관계법 등 현 법체계 및 사법제도의 여러 문제점을 법학자의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쳤다.
그는 『중소기업을 홀대하고 시민단체의 사회참여를 막는 현행 법체계와 비대한 검찰조직의 개혁 없이는 법의 근본이념인 인권을 보장할 길은 막막하다』며 『국내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법은 정말 무죄인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남대 법대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법대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낸 그는 그동안 「한국과 ILO」 「노동법」 「법사회학 서설」 「사법의 민주화」 등 주로 법과 인권, 노동 분야 저술에 힘써왔다. 그는 특히 법조인 대폭 확충, 배심제 등 국민이 참여하는 재판과정 창출을 통해 사법의 민주화를 이루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검 중앙수사부 축소 등 검찰 인사·조직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심수 석방 및 인권 관련법의 개정문제도 전향적인 방향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금 500만원은 제주 4·3항쟁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씨 등 인권운동가를 돕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김관명 기자>김관명>
◎심사평/수상자 비교적 젊어 기대감 더욱 커/불황속에도 상규모 확대한 한국일보사 결의 돋보이고 자연과학 수상작 못내 아쉬워/박성래 한국외대 부총장·심사위원장
지난해보다 출판이 저조했다는 느낌 속에 심사가 진행됐다. 나라살림이 쪼들려만 가던 동안에 이만큼이나마 출판계가 활발했다고 자위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일보사는 이번부터 상금도 올리고 저작상을 둘에서 셋으로 늘렸다.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결의가 더욱 돋보이는 노력으로 높이 평가해줄 일이다.
토의 끝에 심사위원회는 인문, 사회, 시사교양 부문에서 한 권씩을 저작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저작상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출품작이 거의 번역물이었고 유일하게 눈에 띄는 임문순 교수의 「한국의 거미」와 「한국의 고유거미」(지구문화사)는 훌륭한 연구라고 판단됐으나 거미분포 등 조사결과를 나열한 것이어서 「저작」으로는 좀 아쉽다는 평이었다. 송찬식 교수의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의 연구」(일조각), 박명규 교수의 「한국근대국가형성과 농민」(문학과지성사), 이원규 교수의 「종교사회학의 이해」(나남), 신복룡 교수의 「한국정치사상사」(나남) 등도 주목을 받았다.
결국 저작상으로 도진순, 김영민, 박홍규 세 교수의 책을 고르게 됐는데 비교적 젊은 교수들이어서 심사위원들을 더욱 즐겁게 했다. 이 분들의 더욱 훌륭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기대한다. 특히 우리 출판계의 대중화 성향을 반영한 시사교양물 부문의 첫 영광은 박홍규 교수에게 돌아갔다. 학자로서 전문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뜻에서였다. 이 분야에 선정된 책이 「잘 팔리기도 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골랐다. 그러나 주목을 받은 작품 가운데는 독창성이 의문스런 책들도 있었음을 꼬집어 두고 싶다.
□심사위원
박성래 한국외대 부총장(위원장)
이태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김일수 고려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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