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없이 심란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다.대다수 국민은 이제 누구를 원망할 기운조차 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웃음이 가득차야 할 대통령당선자의 얼굴에서까지 한 줄기 기쁨의 빛을 찾아보기 어려울까. 새해 벽두부터 노동법파동에 이어 한보비리, 김현철파문 등 조짐이 수상하더니 결코 지금도 믿기지 않는 모라토리엄(국가채무지불 동결선언)의 위기 속에 정축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4일자 한국일보 29면에 실린 이미완씨의 독자에세이는 비록 언니에게 보내는 사적인 글이지만 소시민이 공통으로 느끼는 참담한 심정을 잘 전해준다. 그러는 한편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큰 언니 힘내요」란 제목의 에세이는 형부의 사업실패로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든 언니에게 보내는 사랑을 듬뿍 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생계유지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제과점 문을 닫아야 하는 언니를 위로하면서 「…그렇지만 언니 곁에는 따뜻한 가슴과 눈빛을 가진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잖아. 내년에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지…」라는 맺음말로 좌절하지 말 것을 기원하고 있다.
이미완씨의 글을 대하면서 작지만 희망의 새싹이 텅빈 가슴에 돋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 싹은 지금은 여리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설령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잘 가꿔야 한다는 각오를 새삼 다져본다.
무인년 새해에는 어느 때 보다도 고단한 삶이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푸슈킨의 시를 읽으면서 잠시라도 마음의 위안을 삼아보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슈킨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민음사 발행, 최선 고려대교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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