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맞는 뉴욕의 풍경은 화려하다 못해 요란스럽기까지 하다. 핑크빛의 현란한 조명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의 첨탑을 은은히 비추는 가운데 록펠러센터앞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서고 거리 곳곳에는 온갖 조형물과 오색 전구가 도시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일반 가정집들도 예외가 아니다. 정원은 물론 지붕 꼭대기까지 치장한 크리스마스 장신구가 저마다 솜씨를 뽐내며 명절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이 가운데 유독 치장이 없거나 불꺼진 집이 있다면 그 집주인은 틀림없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올해 또 한 민족이 여기에 끼어 들었다. 바로 우리 한인들이다. 고국의 경제한파는 이들의 몸과 마음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연일 바다 건너에서 전해오는 우울한 소식에 애간장을 태우며 걱정하는 사이 변변한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 세워놓지 못한 가정이 많다. 『왜 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안해요』라는 아이들의 소리에 비로소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알았다는 교포도 있다. 이제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 가장 깜깜한 집을 찾는다면 십중팔구는 한인 가정이다.
그중에는 당장 생계마저 걱정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한국 관광객이나 주재원, 유학생을 상대로 장사하던 한인들은 매상이 평소의 절반도 안돼 고민이 태산이다. 더한 걱정은 이 한파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한 여행사 대표는 『올해 수지는 그런대로 보존했으나 내년은 전혀 희망이 안보인다』면서 『간판을 내리거나 전업해야할 판』이라고 한숨 지었다.
여기에 감원의 한파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종사해온 현지 채용인들은 해고의 두려움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실적 보너스, 연말휴가 계획 등은 사치스런 말이 돼버렸다. 그 흔하던 망년회조차 종적을 감추고 있다.
고국의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교포들의 크리스마스마저 앗아갔다. 말그대로 「블루 크리스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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